[아주 경제적인 시선] 달러 패권 가장 큰 적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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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경제적인 시선] 달러 패권 가장 큰 적은 트럼프

이용웅 아주경제 편집인 입력 : 2020-08-18 17:06:12
  • 페트로위안, 가상화폐, 국제결제 시스템 대체... 3각 파도가 달러를 덥친다

 

트럼프, 코로나19 경기부양 '독자안' 행정조치 서명 (베드민스터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자신이 소유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골프 리조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 실업수당 지급 연장 등 독자적인 지원책을 담은 행정조치에 서명하고 있다. l





2005년 달러화 폭락시킨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미국 달러화를 전 세계적으로 폭락시킨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5년 초에 벌어진 일이다. 이른바 'BOK 쇼크'라 불리는데, BOK는 ‘Bank of Korea’의 약자이다. 달러가 부족해 외환위기를 맞았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이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의 투매를 야기했으니, 지금 생각해보아도 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2005년 2월 22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딜러들이 일제히 달러를 내다팔고 엔과 유로를 사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달러화 가치는 엔화와 유로화에 대해 각각 1.45%와 1.47%(종가 기준) 폭락했다. 한국은행은 전날인 2월 21일 배포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업무보고 자료에서 "외환보유액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투자대상 통화도 다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귀신같이 찾아본 로이터·블룸버그 등 해외 유력 통신사들이 "한은이 미국 달러화를 매각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그냥 해프닝 정도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불과 석달 뒤 ‘BOK 쇼크’는 다시 한번 외환시장을 강타했다. 같은 해 5월 18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박승 한은 총재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한은이 외환시장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19일 뉴욕과 서울 외환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한때 900원대로 떨어지는 급락세를 보인 것이다.

사실 BOK 쇼크는 울고 싶은 아이(달러 패권)에게 뺨을 때려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20년에 달러 약세에 따라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에 위기가 왔다’는 식의 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간 달러화 가치가 10년 만에 최대 하락폭인 4.4% 떨어지는 등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 수치로 ‘달러의 위기’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전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미국경제의 추락과 상대적으로 견고한 중국경제의 선방 등이 겹치면서 미·중 갈등이 전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상’에 조금씩 의문에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달러화에 대한 의문보다는 도전’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스탠차트은행은 최근 “2008년부터 시작된 장기적·주기적인 미국 달러 상승 추세는 정점에 이르렀으며, 글로벌 경제가 반등하고 미국의 예외주의가 사라짐에 따라 내년에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서에 썼다.

달러 세가지 외혼과 한가지 내우 
그렇다면 기축통화 달러화를 위협하는 요인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단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 가지 외환(外患)’과 ‘한 가지 내우(內憂)’를 들 수 있다. 먼저 석유 달러 결제 시스템인 ‘페트로달러’ 시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이뤄지고 있고 가상화폐라는 전혀 새로운 화폐의 영역이 등장한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다 국제결제 시스템인 ‘SWIFT’의 왜곡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 가지 외부 위협’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개입주의보다는 고립주의를 택하고 화폐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골수 정책이 오히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안에서부터 위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왕좌의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논거를 들 수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은 바로 ‘페트로달러’의 확고한 지위다. 사실 세계 기축통화는 달러가 아닌 석유라는 것이다. 인류 생존의 결정적 요인인 석유 거래는 오로지 달러로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한 나라를 지배하고,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한 대륙을 지배하고, 통화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남긴 말이다.

1974년 6월 8일 키신저 장관은 아직도 화약냄새가 진동하던 중동을 방문해 사우디와 '경제협력 합동위원회' 설립에 대한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약서의 핵심은 석유 거래를 미국 달러로만 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12월 미국 재무부는 사우디금융청(SAMA)과 또 다른 협약을 맺었다. SAMA는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미 달러를 만기 1년 이상의 미 국채를 구입하는 데 쓰고, 대신 미국은 사우디에 국방물자와 군사적 안보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당시 국제통화였던 마르크화나 엔화, 프랑화는 석유시장에서 퇴출되고 오직 미 달러만이 석유를 사고 파는 통화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가 되는 결정적인 무기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최근 은밀하면서도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지난 7월 1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7월 초 상하이국제에너지거래소(INE)에서 중국에 이라크산 원유 300만 배럴을 납품하며 위안화로 거래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2018년 원유선물시장을 연 뒤 석유 메이저 회사가 위안화로 원유를 처음 거래하자 원유시장에서는 '석유달러(페트로달러)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이란은 석유 판매에 미 달러 대신 유로화를 받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과 러시아는 시베리아 가스전의 천연가스를 독일에 직송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발트해 해저에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 또한 페트로달러 시대에 도전장을 내민 사건으로 기억된다.

 기존 모든 화폐를 위협하는 가상화폐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가상화폐의 등장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미 지난해부터 1000억 위안(약 17조원) 규모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달러 기축통화 문제를 제기하며 위안화의 국제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는데, 가상화폐 발행은 바로 그 같은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다. 때문에 “인민은행의 디지털 화폐 발행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을 줄일 수 있을 것”(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자본도 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에 따르면, 중국인이 국내에서 사들인 아파트는 2017년 이후 올해 5월까지 1만3573채로 전체 외국인 아파트 취득 건수의 58.6%를 차지했다. 중국인이 사들인 아파트 거래 금액은 3조1691억원에 달했다. 최근 만난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가상화폐를 본격화하면 국내 부동산 시장 관련 대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심지어 국내은행에서는 각종 규제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이 중국 은행에서 가상화폐로 담보대출을 받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과연 이런 것들이 무리한 상상이 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미국의 감시 시스템 벗어나려는 중국

달러 패권을 담보하는 시스템은 또 하나 있다. 바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이다. 세계 거의 모든 은행 거래가 이를 통해 연결이 되어 있고 결제의 기본은 달러화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세력은 제재를 이행할 때 SWIFT를 이용한다. 대부분 국가들이 금융거래에 SWIFT를 사용하는 만큼, 이 시스템만 막아버리면 자금줄을 손쉽게 차단할 수 있다. 북한의 해외자금줄을 손바닥 보듯이 감시할 수 있는 것도 다 SWIFT 덕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중국·러시아·인도 등 미국의 감시와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금융시스템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SWIFT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다.

사실 페트로달러 시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언제든지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막대한 미국 군사력의 뒷받침이 컸다. 두 차례 걸프전쟁을 통해 미국은 산유국 중 이단아를 용납하지 않았고, 또 막대한 오일머니를 미국 국채와 미국산 무기를 사들이는 데 사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립주의를 택한 트럼프는 자국 내 셰일가스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몰라도 중동의 갖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시리아에서 일방적으로 철군하고 대이란 관계는 좌충우돌을 일삼아 일관성을 잃고 있다. 또 독일, 한국 등에 방위비 압박을 넣으면서 스스로 ‘밀리터리 팍스 아메리카’를 포기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러시아에 더욱 근접하려고 하고, 한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게 내몰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최근 한국 등의 핵무장도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미국의 달러 패권에는 ‘핵우산 제공’도 결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정말 기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가상화폐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페이스북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가상화폐 ‘리브라’에 딴지를 거니, 저커버그는 “우리를 옥죄는 사이에 중국이 가상화폐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울먹거리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어차피 떠나려고 하는 중국을 SWIFT에서 완전 퇴출시키는 핵폭탄급 위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SWIFT나 미국도매결제시스템(CHIPS)에서 배제할 경우, 국제 금융 시장이 어찌 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의 이런 무리한 정책이 오히려 달러의 쇠퇴를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인은 다름 아닌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쳐 미국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 본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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