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세조가 550년 광릉 숲을 지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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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세조가 550년 광릉 숲을 지켜줬다

황호택 논설고문 입력 : 2020-04-07 16:30:42

<32>자연의 신비 광릉수목원과 크낙새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


국립수목원이 자리잡은 남양주 광릉 일대는 조선시대 왕들의 사냥터이자 군사훈련장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전국 어디서나 숲이 울창해 호랑이 곰 늑대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이 출몰했다. 경복궁 근정전 뜰에 호랑이가 배회한 적도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그러나 백성들이 장작과 숯을 땔감으로 이용하고 나무를 심지 않으면서 울창하던 숲이 점점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김동인이 ‘삼천리’에 단편소설 ‘붉은 산’을 발표한 것이 1933년. 나라가 망하기 전에 숲이 먼저 헐벗고 붉은 산의 나라가 된 것이다.

 1468년 세조 '광릉' 들어서며 벌목·경작 금지···천연림처럼 보존돼

나무를 주 연료로 쓰던 시대에 그나마 광릉 숲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1468년 세조의 광릉이 들어선 덕분이다. 세종 30년에는 포천 풍양 등 광릉 주변 지역을 강무장 (講武場)으로 지정해 벌목과 경작을 금지했다. 강무장은 왕이 수렵을 하고 군사훈련을 하는 장소다. 550년 동안 나뭇가지 하나 풀 한 포기 건드리는 것조차 금지하면서 광릉숲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광릉수목원의 전나무 숲길.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담은 역사물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사진=김세구]


“나이 60에 능참봉”이란 속담이 생겼을 만큼 능참봉은 종9품의 말단 관리였다. “여든에 능참봉을 하니 거동이 한달에 29번”이라는 속담도 있다. 능참봉 위에는 종5품의 능령과 예조의 고위 관리들이 있었다. 능참봉의 주업무는 제사용품 관리, 왕릉 주변의 산불방지와 벌채를 막는 것이었다. 능참봉은 아래로 수복, 능수호군, 산직 같은 직원을 두었다. 광릉에서는 능역 바깥의 마을에서 두두인(頭頭人)을 1명씩 뽑아서 산직을 도와 산불을 방지하고 분묘설치와 경작, 땔나무 채취를 막는 역할을 맡겼다.
일제는 숲이 잘 보존된 광릉숲을 1912년 임업 시험림으로 지정하여 묘포(묘목을 기르는 밭)를 설치했다. 1929년에는 임업시험장 광릉출장소가 설치되어 숲을 관리했다.

일제 때 나무 수탈···양심적 일본인 아사카와가 숲 돌봐

일제의 강제합병 이후 일본은 한국에서 쌀을 비롯한 많은 물자를 수탈해 갔다. 나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 최대의 제지회사에 공급된 펄프의 대부분이 조선산이었다. 나무 수탈을 담당하던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 임업시험장에 아사카와 다쿠미 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광릉숲을 돌본 양심적 일본인이었다. 그는 임업시험장 광릉출장소에 심을 수종(樹種)을 직접 골라 심고 가꾸는 데 열정을 쏟았다. 한복을 즐겨 입었고 한국말을 썩 잘했다. 그는 임업시험장의 평직원으로 19년간 일하면서 조선의 민예품 연구에도 관심을 쏟았다. 망우리에 묻힌 유일한 외국인인 아사카와의 묘소에는 매년 4월 2일 기일이면 추모하는 이들이 잊지않고 찾아온다.

 한국의 산림녹화에 공이 큰 6인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 [사진=김세구]


광릉숲 명예의 전당에는 붉은산을 녹화하는 데 뚜렷한 공을 세운 6명의 부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제 25회 식목일을 맞아 광릉숲 국립수목원에서 전나무, 잣나무 조림행사를 실시하면서 산림녹화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평생을 나무 표본과 종자 수집에 바친 ‘나무 할아버지’ 김이만, 척박한 땅에서 빨리 잘 자라는 현사시나무 등 수종 개발에 평생을 바친 임목육종학자 현신규 박사, 전 재산과 열정을 바쳐 전남 장성에 500ha가 넘는 삼나무와 편백림을 조성한 독림가 임종국, 천리포수목원을 만들고 한국인으로 귀화한 민병갈, 대규모 활엽수 단지를 조성하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도록 하고 화장시설을 건립해 산림보호에 기여한 SK 최종현 회장이 명예의 전당에서 박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나무할아버지 김이만, 임목육종학자 현신규, 독림가 임종국 등 헌신

광릉 숲 2240ha에는 식물 865종, 곤충 3925종, 조류 175종 등 모두 5710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노랑앉은부채, 개싹눈비꽃, 흰진달래 등 광릉숲 특산식물과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가 포함된다. 단위면적당 식물 종수를 보면 1ha당 39.6종으로 설악산 3.2종의 10배가 넘는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높은 것은 온대지역에서는 드물게 장기간 숲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광릉숲은 인공림도 잘 가꾸면 천연림처럼 안정되고 풍요로운 숲이 되는 실증 사례”라고 말한다.  광릉숲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광릉수목원의 육림호. 이곳에서는 어디에서 셔텨를 눌러도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 [사진=김세구]


산림박물관을 지나 전나무 숲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육림호가 나온다. 소리봉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어놓은 인공호수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수목원에서 인기있는 포토존이다. 육림호 주변에 수목원에서 유일한 카페가 있다. 1889년에 낙엽송 간벌재로 지은 건물로 통나무집의 시초라고 한다. 카페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육림호의 정취는 서울시내 수많은 커피숍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 없다. 커피 값이 광화문이나 강남의 스타벅스 수준이다. 나무와 호수 값이 커피값에 얹혀진 것이다.
500년 역사의 광릉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는 수령 200년의 졸참나무로 높이 23m, 지름 1m에 이른다. 광릉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전나무는 수령 180년을 자랑한다. 광릉수목원의 전나무들은 1927년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씨앗을 가져다 묘목을 키워 이식했다. 200m에 이르는 숲길에 80년 이상 수령의 전나무들이 빽빽하다. 말을 탄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을 담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수목원을 찾아와 이곳에 전나무 묘목 3000그루를 심고 기념표석을 설치했지만 지금은 동부구치소에 있다. 묘목들이 다 자라면 전나무 숲이 더욱 울창해질 것이다.
 2010년 곤파스 태풍에 쓰러진 전나무가 그대로 누워 있다. 원래 전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심근성(深根性) 나무인데 국립수목원처럼 물기가 많은 지역에서는 천근성(淺根性)으로 바뀐다. 생물의 환경 적응이다. 고사목은 균류와 곤충의 서식처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새들이 모여든다. 숲에 영양분도 공급한다.

광릉수목원의 크낙새는 1989년 이후 목격되지 않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천연기념물 크낙새는 이해주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장이 1989년 목격한 이후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 천연기념물은 50년 동안 목격되지 않아야 해제되기 때문에 남한에서 아직 멸절됐다고 볼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 같은 곳에서 서식할 가능성도 있다.
중앙일보 전익진 기자가 2018년 북한 황해도에 갔을 때 북한 직원이 가져온 새장 속의 크낙새를 봤다고 한다. 북한은 1969년부터 황해북도 평산군과 린산군, 황해남도 봉천군 일대 등 4곳을 크낙새 보호 증식 및 보호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 크낙새 2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는 크낙새를 ‘클락, 클락’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클락새’라 부른다.

 1999년 '국립수목원' 변경···역사성 지닌 이름 '광릉' 되찾아야 

민간에서는 아직도 국립수목원보다는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1999년 수목원 명칭에서 광릉이 빠지고 그냥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었다. 국립 공립 사립은 운영주체를 표기하는 용어다.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된 것이라면 국립 광릉수목원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의 역사성과 대중성을 버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큰 바위에 원래 명칭인 '광릉수목원'이 새겨져 있다. [사진=김세구]


광릉숲의 전체면적 중 55%는 남양주 땅이고 포천 40%, 의정부 5%다. 그런데 국립수목원 사무실 건물의 주소지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415. 이를 근거로 포천시는 ‘포천 국립수목원’으로 이름을 바꿔달라고 주장한다. 세조가 묻힌 광릉이 남양주시 행정구역 안에 있어 포천 사람들은 옛날 이름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광릉숲과 국립수목원은 광릉 때문에 태어나고 보존됐다. 포천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방안을 마련하더라도 광릉숲의 역사를 알려주는 이름은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 예약제로 관람객 수를 하루 5000명 이내로 제한하지만 그래도 매년 35만명이 국립수목원을 찾는다. 생물자원의 보고 광릉수목원은 우리가 잘 가꿔 미래 세대에게 넘겨줘야 할 자랑스런 자연유산이다.<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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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1.조선왕조실록
2.광릉숲 600년 1, 김은경 이해주 이정호, 국립수목원
3.광릉숲 이야기, 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
4.’조선을 사랑한 한국인, 한국의 나무와 흙이 되다’, 김영식, 신동아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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