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저물가에 저금리 독배 든 이주열의 장고(長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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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저물가에 저금리 독배 든 이주열의 장고(長考)

전운 금융부 부장 입력 : 2019-09-26 05:00:00

전운 금융부장

지난달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0.038%로 1965년 물가지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저성장, 저금리에 저물가까지 겹친 명실상부한 '3저(低) 시대'가 왔다.

1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은 -0.3%를 기록하며 ‘역성장 쇼크’에 빠졌고,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장기화되는 저물가와 저성장 늪에 빠지면서 한국 경제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결국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7월 기준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중 무역마찰 및 세계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계속해 금리 인하를 카드로 내밀고 있고, 유럽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체제에 돌입한 것이 이 총재의 결단을 앞당겼다.

이제 이 총재의 고민은 ‘추가 인하’로 향하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경제성장률과 물가를 고려해 다음달과 내년 1분기 두 차례 금리 인하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기조도 결국 한국은행의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단순히 경기부양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마냥 금리 인하에 무게를 둘 수만도 없는 실정이다.

금리 인하가 경기활성화를 위한 단기적인 처방이 될 수도 있지만, 최근 전개되는 경기둔화가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통화정책이 정작 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부작용도 걱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계부채다. 이번 정권 들어 강력한 가계부채 억제 정책으로 증가율을 둔화시켜 놨는데, 기준금리를 낮춘다면 가계부채 증가율이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인 1500조원을 돌파하며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로 인한 증가율 재상승은 시한폭탄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금리가 인하되면서 올해 2분기 가계부채 잔액은 1556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규제로 인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폭은 축소됐지만, 전분기보다는 확대되며 가계 빚이 다시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 경제가 아직 맛보지 못한 디플레이션의 공포 때문에 금리 인하 요구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저물가의 늪에서 저금리 대출이라는 유혹은 서민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물가 하락은 서민들의 소득과도 직결된다. 임금 하락도 물가의 한 요소로, 소득이 줄면 이는 ‘빚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인한 부채 증가는 디플레이션 시대에선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대출금리가 상승해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7월 은행의 전체 대출 평균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한 달 전보다 0.09% 포인트 내린 3.40%다. 하지만 대출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 대출금리는 2.80%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이전인 6월보다 0.01% 포인트 올랐다.

앞으로 9∼11월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실질 대출금리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 가계의 빚 부담이 늘어나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얼어붙어 있는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가 지금 당장 충격요법이 될 수는 있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통화정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추가적인 통화 완화조치가 경제회복으로 이어지도록 특단의 대책을 함께 제시하지 않으면, 일본이 저금리와 부동산·부채 등으로 20년을 잃은 것처럼 우리도 긴 세월을 잃어버릴 수 있다.

또 수년 전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최경환표 저금리’ 정책이 등장했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파트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정책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집 한채 사지 못하는 젊은 세대는 계속해 늘어날 수 있다. 서민경제를 위해서라도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주열 총재의 장고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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