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2-2] 무궁화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 2019-03-27 06:00 수정 : 2019-03-27 06:00:00
고금주, 구당서·신라전, 삼국사기 등 역사책 속 '무궁화의 오류'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2019-03-2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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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고금주]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국내 대다수 문헌이 '무궁화 한반도 국화설'의 근거로 「산해경」 다음으로 많이 드는 중국 고문헌은 「고금주(古今注)」다. 이수광(李睟光, 1563년~1629년)이 1614년에 펴낸 「지봉유설(芝峯類說)」 에서 인용한 「고금주」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핀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고 기재됐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출전의 정확성과 문구하나 자구하나 조목조목 되짚어보겠다.

첫째, 출전이 고금주가 맞나?

아니다. 「지봉유설」의 ‘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의 출전은 서진(西晋)때 최표(崔豹 ?~?)라는 인물이 펴낸 「고금주」가 아니다. 동진(東晋) 때 곽박(郭璞 276~324)이라는 사람이 펴낸 「현중기(玄中記)」다. 「지봉유설」 인용 자체가 오기다. 「현중기」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 구미호를 비롯한 각종 귀신과 괴물들의 이야기의 원천이다. 앞서 이야기한 「산해경」과 함께 중국 지괴소설의 양대 대표서적이다.

둘째, ‘군자지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가?

아니다. 비단 무궁화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중국 문헌에 ‘군자국(君子國)’ ,‘군자지국(君子之國)’이 나오면 무조건 한국을 가리키는 거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문헌에 나오는 ‘군자국’ , ‘군자지국’ 대다수는 공상 속의 나라다. 그게 아니면 춘추시대의 위(魏) 나라, 노(魯) 나라, 또는 지금 허난성 남부의 소국 종오(鐘吾) 등 중원과 산둥반도 일대 제후국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신라)를 적시하며 ‘군자지국’으로 명기한 최초의 중국 문헌은 945년에 편찬된 「구당서·동이전(舊唐書·東夷傳)」이다.

셋째, ‘지방천리’가 우리나라의 영역인가?

아니다. ‘地方千里’는 BC 4세기 「맹자·만장하(孟子·萬章下)」를 필두로 10세기 「태평광기·돈손(太平廣記·頓遜)」까지 중국 고문헌에 28회 출현한다. ‘지방천리’는 「맹자」에서 주(周) 나라 왕의 직할 영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태평광기」에서는 ‘돈손’이라는 변방의 면적을 가리키는 등 주로 중국의 특정 지역 면적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반면에 ‘지방천리’가 한반도 또는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를 지칭하는 중국 고문헌은 단 한 건도 없다.

넷째, ‘다목근화’는 우리나라인가?

아니다. 무궁화 원산지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남부 지역이다. 무궁화를 한국의 꽃으로, 한반도를 무궁화가 만발한 지역으로 기록한 옛 중국 문헌은 단 한 권도 없다. 간혹 ‘바이두’ 등 중국 포털 사이트를 비롯 중국 온라인상의 자료에는 ‘근화국·한국(槿花國·韓國)’ 이라는 구절이 눈에 뜨이는데 대부분 현대 한국의 무궁화 관련 글을 역(逆)번역해 올린 것이다.

또한 「지봉유설」의 ‘다목근화(多木槿花)’는 ‘다목근지화(多木槿之华)’의 오기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 문헌상의 ‘다목근지화’와 ‘근역(槿域)'의 절대 다수는 무궁화의 원산지로 공인된 화남지역을 가리킨다. 무궁화 예찬시로 유명한 강총(江总, 519~594)의 남월목근부(南越木槿赋)도 지금의 광둥과 윈난 일대에 만발한 무궁화를 노래한 것이다. 참고로 ‘군자지국','다목근지화’ 등 ‘군자지국’과 ‘무궁화’가 연결돼 나오는 중국 고문헌은 「현중기」와 「산해경」의 표절본으로 의심되는 한(漢) 나라 시대 출간 작자 미상의 「외국도(外国图)」, 단 두 권뿐이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구당서·신라전」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국내 문헌들이 「산해경」, 「고금주」 다음으로 '무궁화 한반도 국화설'의 근거를 드는 옛 문헌은 『구당서·신라전(舊唐書·新羅傳)」와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다. 

「구당서·신라전」에는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했다"는 구절이 있다. 또 최치원이 당 나라 소종(昭宗)에게 보냈다는 ‘사불허북국거상표’엔 "신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 했다"는 구절이 있다.  이 두 문헌이 신라 시대부터 우리나라를 근역,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확언하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첫째, 출전은 정확하며 실제 그 구절이 있는가?

아니다. 「구당서」에는 ‘신라전’ 자체가 없다. 「구당서」 199장 상편 ‘동이전’에서 고려(고구려를 뜻함), 백제, 신라, 왜국, 일본이 차례로 수록돼 있다. 또한 ‘동이전’에는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는 구절은 물론 ‘근화향’, ‘근화’라는 단어 자체가 전혀 없다. 이 역시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년 편찬)의 오기를 후학들이 400여년째 검증 없이 또는 의도적으로 답습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둘째, 예로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근화지향이라 불러왔을까?

아니다. ‘근화지향’, ‘근화향’, ‘근역’, ‘다목근화’ 등 무궁화 나라를 뜻하는 낱말의 절대다수는 우리나라(특히 구한말 이후)의 자칭일 뿐이다. ‘근화지향’이라는 낱말도 ‘사불허북국거상표’에서 신라를 ‘근화지향’이라는 자칭한 게 처음이다. 또한 고려말까지 유일한 표현이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고려 때 표사(表辭)에서는 고려가 스스로를 ‘근화향’이라 하였다고 씌어 있으나 최남선은 고려의 글에서도 ‘근화향’을 쓴 예를 보지 못하였다고 반박했다. 조선시대부터 아주 드물게 ‘근역(槿域)’이라 자칭한 예는 있으나 ‘근화향’ ‘근화지향’은 없다.

셋째, ‘지역천리’와 ‘근화향’이 우리나라 전역인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 ‘지역천리’, ‘근화향’은 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중국내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들 단어가 한국을 뜻하는 것이라 해도 우리나라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영남 지역을 차지한 신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 차례 상술 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모든 사서와 지리지, 「대명일통지」부터 「사고전서」까지 근세 중국의 모든 문헌은 우리나라의 영역을 ‘사천리’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무궁화 한반도 자생설’을 끼워 맞추기 위해 대한의 고유한 판도 ‘사천리’를 삼국시대 신라영토 ‘일천리’로 축소한 자들의 ‘자기 국사 왜곡’ ‘자기 국토 참절’ 행각에 형용할 수 없는 깊은 분노를 느낀다.

◆역사책에서도 노래에서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첫째, 「삼국사기」에도 화랑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왜, 명색이 우리나라 국화(격)인 무궁화의 한반도 자생설을 중국 문헌에만 근거를 찾을까? 필자의 오랜 의문이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 대표 3대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 「제왕운기」에서 무궁화를 찾아보았다.

먼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1145년 편찬, 국보 322-1,2호)에 의하면 고구려는 매화를, 백제는 국화, 신라는 모란을 선호했다. 고구려 궁궐에서는 매화를 가꾸었으며 백제 왕실에서는 국화를 꽃 피웠다(1)*. 신라 선덕여왕때는 당나라 태종이 모란을 보내왔고 신라 후기 최치원은 전국의 사찰에 모란을 심었다.

신라 12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 총28권의 ‘본기(本紀)’는 물론 삼국의 제도·문화·지리를 서술한 총 9권의 ‘지(志)’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다. 심지어 신라 화랑들이 무궁화를 머리에 꼽고 다녔다는 기존 한국문헌을 증빙해주기 위하여 화랑의 이야기를 기록한 ‘열전’을 찾아보았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남아있는 최고(最古)의 정사(正史)이자 대한민국 국보 322호 「삼국사기」에 대한민국 국화(격)인 무궁화는 왜 단 한 송이도 피지 않았을까?

둘째, 「삼국유사」에도 향가들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왕과 지배층 중심의 『삼국사기』가 엄숙한 정사라서 그럴까? 그리하여 필자는 고려 승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1281년 편찬, 국보 제306-1,2호)를 찾아봤다.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한 「삼국유사」는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 국가의 흥망·신화·전설·신앙 및 역사, 불교에 관한 기록, 고승들에 대한 설화, 밀교 승려들에 대한 행적, 고승들의 행정, 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수록돼 있다.

주로 신라와 불교를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는 「삼국유사」는 특히 이두로 쓰인 향가 14수가 기록돼 있어 고대 인문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자료다. 연꽃과 모란 매화와 철쭉 등이 고대사의 정원에 만개한 「삼국유사」의 어느 모퉁이에도 무궁화는 단 한송이도 피지 않았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가>의 그 꽃이 철쭉이 아닌 무궁화여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특히 지금의 영남을 중심으로 한 신라가 예로부터 무궁화가 만발한 지역이었고 무궁화가 백성들의 마음속의 국화였다면.

셋째, 「제왕운기」에도 민족사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최근 필자는 ‘무궁화’에 집중하다가 의외의 수확을 거뒀다. 중화사대주의와 종일식민사관에 오래 묻혀있던 진실의 금맥을 발견한 것이다. 고려시대 대표 역사서는 「삼국사기」도, 「삼국유사」도 아닌, 「제왕운기」라는 거대한 신대륙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고려 중후기의 학자 이승휴(李承休, 1224~1300)가 1287년에 편찬한 「제왕운기(帝王韻紀)」(보물 제418호)는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식한 최초의 역사서이다. 이 책은 중국사와 한국사를 각 권으로 분리하고 한민족이 단군을 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나타냈고, 당시까지 신화로 전승된 단군신화를 한국사의 체계 속에 편입시켰다. 또 발해를 최초로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인정하여 만주 일대도 고려의 영역이었음을 역사적으로 고증함으로써 영토회복의 뜻을 명시하다시피 했다.

이러한 「제왕운기」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다. 단군의 전조선(前朝鮮)부터 신라·백제·고구려의 3국과 후삼국 및 발해가 고려로 통일되는 과정까지를 남김없이 서술한 ‘동국군왕개국연대’ 7언시 264귀 1460언에도 무궁화 꽃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었다.

고려 태조에서부터 필자 당대인 충렬왕 때까지를 기록한 본조군왕세계연대’ 오언시 700언에도 무궁화 꽃 한송이도 없었다. 즉 코리아의 고려시대 「제왕운기」 운문 총 2160언에도 매화·국화·모란·살구꽃·배꽃·목련·해당화·금잔화·치자꽃·옥잠화·백일홍 등 온갖 꽃들이 만발했으나 무궁화는 피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회자되는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의 ‘무궁화’인데 말이다. 이처럼 고려시대 3대 대표 역사서이자 국보와 보물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에 무궁화는 단 한마디도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비단 역사 서적뿐만 아니다.

◆고려속요에도, 경기체가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삼월 지나며 핀 /아아, 늦봄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구월 구일에 / 아아, 약이라고 먹는 노란 국화꽃 /꽃이 집안에 드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 고려 속요 <동동> 일부 발췌


고려시대 무궁화가 민중의 사랑을 받은 꽃이었다면 고려속요 <동동>에서 진달래꽃과 국화꽃과 함께 무궁화도 피어났어야 아닐까?

그러고 보니 고려 민중들이 즐겨 부르던 <동동>, <쌍화점>, <가시리>, <만전춘> 등 고려속요에도 사대부들이 즐겨 흥얼거리던 〈한림별곡〉, 〈죽계별곡〉, 〈관동별곡〉 등 경기체가를 포함한 모든 고려가요에도 무궁화는 단 한 소절 한 음절도 없다.

그런데, “무궁화가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은 도대체 뭔가?  (12-3에 계속)


◆◇◆◇◆◇◆◇주석
(1)*
1.백제 동성왕(재위479년~501)때 왕궁 정원에 국화(菊花)를 가꾸었다-[삼국사기].
2.무녕왕릉 정림사지 등 백제유적지 발굴 와당 기와무늬가 菊花
3.일본에서 菊花는 왕실 문장, 일등공로 훈장도 菊花문장. 일본의 법정 國花가 아닌 벚꽃(사쿠라)보다 오히려 1869년 법적으로 왕실의 꽃이 된 菊花가 군주국 일본의 國花라 할 수 있음.
4.2001년, 아키히토 일왕의 고백(역사책 '속일본기'에 간무일왕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어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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