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1-3]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영토를 포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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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1-3]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영토를 포기했는가?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 2019-03-15 06:00:00
  • ‘대한’(大韓)을 사상 최초로 말씀하고 국호로 삼은 고종황제

  • 헌법 제3조 ‘영토 자기 참절’ 비극의 탄생 배경

  • 헌법 개정시, 대한민국 영토 규정을 간도로 확대하라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나의 문학은 외로움이고 사학은 그리움이다. 철학은 새로움이고 미학은 서러움이다.
전공인 법학은 올바름에 대한 사무침이다.
일개 법학자 따위가 주제넘게 역사 문제(?)인 ‘애국가’ 퇴출을 거론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무궁화 삼천리 국토참절 애국가'는 헌법과 주권, 국토 통일 국법 헌정질서 등 국가의 근본 일체를 지배하는 헌법의 근원, 헌법원(憲法源)문제라서 이런다.

◆‘대한’(大韓)을 사상 최초로 말씀하고 국호로 삼은 이는?

한평생 알지 못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 이름 ‘대한’을 누가 맨 처음 말했고 누가 맨 처음 국호로 사용했나를.

대한제국 원년 1897년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36권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1897년 10월 11일 고종은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이하를 인견했다. 의정 심순택(沈舜澤), 특진관 조병세(趙秉世), 궁내부 대신 민영규(閔泳奎), 장예원 경 김영수(金永壽)

상(고종)이 이르기를,

"경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려는 것이 있다. 정사를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에 모든 예가 다 새로워졌으니 원구단에 첫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마땅히 국호(國號)를 정하여 써야 한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의 옛날에 봉해진 조선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에 부합해야 합니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 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됐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삼대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의 제문과 반조문에 모두 ‘대한(大韓)’으로 쓰도록 하라."

하였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1일 양력 3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한글본 전문)

이렇게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건국 하루 전인 1897년 10월 11일 ‘대한’을 4번씩이나 언급하고 국호로 쓰도록 지시했다. 어디 이뿐인가.

그 다음 날 10월 13일 고종황제는 오전 8시에 태극전에 나아가 정식으로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반포했다. 그리고 ‘국토는 사천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을 세웠으니,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줬다. (幅員四千里, 建一統之業。 山河鞏固, 垂裕我子孫萬世磐石之宗)라는 반조문을 반포하였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3일 양력 2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11월 22일 고종황제는 일본국 특파공사 가토 마스오의 "하늘의 도움을 받아 대대로 몰려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대일본국 대황제는 위엄과 덕이 높은 좋은 벗인 대한국(大韓國) 대황제 폐하에게 공손히 말씀드립니다.“ 신임장을 봉정받는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1월 22일 양력 6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헌법 제3조 ‘영토 자기 참절’ 비극의 탄생은 누가 언제 어떻게?

대한민국 헌법이 여타 국가의 헌법과 독특한 특징은 영토 관련 조항이 헌법, 그것도 맨 앞부분 제3조에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포함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영토 조항에 대한 이견은 제헌의원 헌법기초위원이었던 김교현 의원이 제기했다.

“이미 국가가 있어 고유의 영토가 있는 마당에 굳이 영토 조항을 넣을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나라로서 여기에 쓰인 이것(한반도와 부속도서)밖에 못 가진다는 제한적 정신으로 표시됐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당시 유진오 헌법기초전문위원은 이렇게 답변했다.

“영토에 관한 조항은 안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다. 아까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연방국가가 아니고 단일국가니까 안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헌법에 적용된 범위가 38선 이남뿐만 아니라 우리 조선 고유의 영토로 삼아가지고 성립되는 국가의 형태를 표시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원안에 대해 김교현 의원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고유한 판도로 한다’는 수정안이 제출되면서 격론이 벌어졌다. 수정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우리의 영토를 반도라고 쓴 것은 일본의 의도”라며 “역사상으로 북간도의 모든 권리는 우리 민족에게 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국토로 편입해야 할 것”이라고 개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잘못하다가 국제적으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고 결국 수정안은 표결에 부쳐졌다.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하자는 수정안 투표 결과는 재석의원 171명 가운데 찬성 13표, 반대 106표. 우리나라 영토가 ‘대한의 고유한 영토 사천리에서 한반도 삼천리로 축소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서라도 유진오 헌법기초전문위원에게 묻고 싶다. “조선 고유의 영토가 한반도뿐이었던가?”라고.

대한민국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이고 할아버지는 대한제국이다.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되어있듯 대한민국은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역대 헌법은 대한제국을 계승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왜 망해버린 대한제국의 국호를 계승했을까?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대한제국의 강토 사천리를 상속받기 위해서였다. 그 증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역대헌법 대한민국 강토는 구한국의 판도(1919년 헌법 제3조) 또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1944년 헌법 제2조)다.

즉,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의 국호(대한)와 국토(사천리)를 상속받았으나 국체(제국)는 상속받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호(대한)와 국체(공화국)만 상속받았을 뿐 국토(사천리)는 상속을 포기했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재산 사천리 강산을 상속받으려 애썼으나, 아들 대한민국은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을 성문화한 헌법 제3조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사천리 국토상속을 포기했다.

‘무궁화 삼천리’ 악마의 주문에 세뇌돼 사천리 강산을 삼천리로 축내더니 다시 그마저 반토막(무궁화 자생가능지역인 남한 뿐)내고 말았다.

◆당신이 소(小)한민국 아닌 대(大)한민국서 살고 싶다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의 헌법 제3조는 남북이 갈라지던 해방공간에서 통일의 염원을 담은 소중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1948년 헌법제정안 초안 검토시에 김교헌 의원을 비롯한 제헌의원 13명은 “대한민국 영토를 반도라고 쓴 것은 일본의 의도를 따른 것이다. 간도의 모든 권리는 한민족에게 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국토로 편입해야 할 것”이라며 조선의 영토가 삼천리 한반도라고 인식한 유진오의 헌법초안에 대한 수정안을 내었던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갈수록 노골화되는 중국의 간도를 포함한 동북공정 공세에 헌법 제3조는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한반도는 압록강-두만강 이남 지역으로 의미하므로, 우리 헌법은 이미 간도지역을 포기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혹자는 영토조항을 헌법에 규정한 세계각국의 헌법례(연방국가가 아닌 단일국가가 영토조항을 헌법에 규정한 나라는 한국·대만·필리핀·핀란드·이란·터키·그리스·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 9개 나라 뿐)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영토조항을 헌법에서 아예 삭제해 버리자고 말한다. 그러나 영토조항을 완전히 지워버린다면 중국과 일본 등 제3국에게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요구 할 수 있는 헌법상 근거를 스스로 제거하는 꼴이 된다.

따라서 필자는 향후 헌법을 개정할 때 임시정부 최종헌법인 헌장 제2조를 원용하여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간도를 아우르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한다.”라고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만일 이러한 개헌이 번거롭다면 가칭 [영토 기본법]을 제정하여 ‘헌법상의 한반도는 대한민국이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의 고유한 판도를 지칭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명기한 조항을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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