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가상 인간에 빠진 현실 사람들…'대유쾌 마운틴'에 도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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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돋보기] 가상 인간에 빠진 현실 사람들…'대유쾌 마운틴'에 도달했나

홍승완 기자 입력 : 2021-12-01 15:57:53
  • 사이버가수 아담 뒤를 이을 가상 인간들의 등장…로지, 올해 광고 수입만 10억

  • '불쾌한 골짜기' 건너뛸 만큼 정교해진 기술...누리꾼 "대유쾌 마운틴 도달했다"

  • 가상인간 선보이는 기업들…롯데홈쇼핑·LG전자 각 루시·래아 선보이며 홍보활동

사이버 가수 아담 1집 앨범 커버

1998년 1월 23일. 사이버 가수 아담이 우리나라 가요계에 처음 등장한 날이다. 한쪽 눈을 가릴 만큼 길게 늘어트린 앞머리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아담은 당시 배우 원빈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담은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이 담긴 1집 앨범을 발매해 20만장의 판매량을 올렸다. 아담은 음료 CF까지 찍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2집 실패 이후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설, 입대설 등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돌연 사라졌다.

아담이 떠난 뒤로 한동안 잠잠했던 가상 인간이 23년이란 공백을 깨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지난 7월에 모습을 드러낸 로지(ROZY)가 그 주인공이다. 170㎝를 넘는 큰 키에 동·서양 이미지가 절묘하게 섞인 외모, 남다른 스타일, 자유롭고 친근한 성격을 지닌 로지는 신한금융그룹 광고모델을 시작으로 광고계를 휩쓸고 있다. 특히 가상 인간을 진짜처럼 느껴지게 할 만큼 기술 수준이 높아져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섰단 평가가 나온다.
 

모리 마사히로의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나타낸 그래프

먼저 불쾌한 골짜기란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1970년에 만든 이론으로 사람이 아닌 존재가 사람과 유사한 행동을 할 때 오히려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불쾌한 골짜기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면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호감도는 다시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대(大)유쾌 마운틴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쾌한 골짜기를 정반대로 뒤집은 개념이다.
 

[사진=가상 인간 '로지' 인스타그램]

실제로 로지는 인스타그램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덕수궁에 간 사진과 N서울타워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 등을 공유하고 있다. 또 직접 댓글을 남겨 대중과 소통하기도 한다. 실제 사람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 가상 인간이 등장하자 현실 속 사람들이 보내는 관심은 커지는 모양새다. 1일 기준 로지 인스타 팔로워는 10만 8000명을 넘어섰으며, 광고 수익도 10억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 인간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른 배경엔 사생활 논란이 없다는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광고 모델이 과거 학교 폭력에 연루되거나 음주 운전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광고주 입장에선 막대한 손해와 신뢰도 하락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가상 인간은 사생활 문제를 일으킬 염려가 없고 시공간 제약이 없어 활동 영역도 제한받지 않아 광고업계에선 일석이조란 평가를 받고 있다.
 

롯데홈쇼핑이 국내 홈쇼핑 업계 최초로 선보인 가상 모델 '루시' [사진=롯데홈쇼핑]

그러다 보니 가상 인간은 광고 모델을 넘어 TV홈쇼핑에도 등장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국내 홈쇼핑 업계 최초로 가상 모델 '루시'를 선보였다. 롯데홈쇼핑은 실제로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 얼굴을 합성하고 피부 솜털까지 구현하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델을 만들었다. 또 루시에게 나이와 직업, 전공 분야와 같은 정보까지 부여하면서 현실감을 더했다. 롯데홈쇼핑은 루시를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29세 모델이자 디자인 연구원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2만명을 보유한 루시는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제품 광고를 하는가 하면, 조만간 쇼호스트 데뷔도 앞두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앞서 가상 인간을 선보인 바 있다. LG전자는 지난 1월에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김래아'를 소개했다. '미래에서 온 아이'란 뜻을 가진 래아는 싱어송라이터이자 DJ, 인플루언서로서 LG전자를 홍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CES에서 가상 인간 '네온'을 처음 공개했다. 네온은 삼성전자 사내벤처 스타랩스가 개발한 가상 인간으로 각자 다른 콘셉트를 바탕으로 사람과 상호 작용해 진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LG전자가 선보인 가상 인간 래아 [사진=LG전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가상 인간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가상 인간 수요는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ICT·반도체 투자전문회사로 출범한 SK스퀘어는 가상인간 개발업체 온마인드에 80억원을 투자해 지분 40%를 확보했다. 온마인드는 인스타그래모가 틱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상인간 '수아' 제작업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연합뉴스에 "MZ세대는 가상 공간에 익숙해 가상 인간을 수용하는 데 한결 쉽다. 앞으로 가상 인간이 얼마나 지속해서 활동하고 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여지는지에 성패가 달려있다.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 향후 개개인의 아바타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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