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18) '서열 2위' 푹 주석 돌연 사임 …베트남 정가에 무슨일?
Koiners다음 브랜드 칼럼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18) '서열 2위' 푹 주석 돌연 사임 …베트남 정가에 무슨일?

이한우 서강대 교수 입력 : 2023-01-31 19:00:00

[하노이 홍강 강변에서 이한우 교수]


정치적 격변기의 베트남
 
 
2022년 말과 2023년 초에 베트남은 정치적 격변을 겪고 있다. 작년은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 수립 30주년을 맞는 해였기에 수많은 행사들이 열렸고, 12월 4일부터 6일까지 베트남 국가주석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시 한국 방문단은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 팜빈민 부총리를 비롯한 여러 명의 장관들로 구성됐다. 양국 간 정상회담, 기업인 및 베트남 관련 인사들과의 만남, 경기도 광주의 다문화가정 방문 등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람들은 당시 우호적 분위기에 취해 이 방문단에 국가주석의 부인이 동행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 그때까지 베트남에서 정치적 격변이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작년 12월 30일에 베트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팜빈민, 부득담 두 부총리를 당 정치국 및 중앙위원회 위원직에서 면직시켰고, 올해 1월 5일에 국회는 이들을 부총리에서 면직시켰다.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은 코로나 시국에서 자국민의 귀국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부과하고 뇌물을 챙긴 일, 코로나 진단 키트를 개발한 비엣아(Viet A) 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들과 장관, 차관, 대사 등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이 여러 명 연루되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이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당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겠다고 요청하여, 1월 17일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를 승인했고, 18일에 국회는 그를 국가주석에서 면직시켰다. 이 일은 국가원수를 면직시키는 대사건이었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국가주석이 사임을 요청하는 형식을 취해 그의 체면을 깎아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부조직체계로 보면 고위 공무원들의 부패 연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그들의 직속 상관인 총리가 지는 게 타당할 듯한데, 국가주석이 그 책임을 진 것은 그의 사임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항간에 떠도는 얘기로는, 코로나 진단 키트를 개발한 비엣아 주식의 80%가 누구의 소유인지 불분명한데 실제로는 푹 주석 부인의 것이라는 얘기다. 푹 주석의 가족들은 다양한 이권에 개입해 있다고 한다. 푹 주석의 사임 원인을 가정사로 돌리기에는 미흡하며, 최근 베트남의 정치적 격변을 작금의 정치경제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베트남 권력서열 2위'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 돌연 사임 (방콕 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 권력 서열 2위인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이 17일(현지시간) 돌연 사임했다. 푹 주석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 사이에서 친한파로 분류되는 인물로 지난 2021년 4월 주석직에 올랐다. 사진은 푹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도중 APEC 지도자들의 APEC 기업인 자문위원회와의 담화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는 모습. 



현재의 정치적 격변을 이해하려면 10년 전으로 올라가 봐야 한다. 2011년 제11차 공산당대회에서 응우옌푸쫑이 총비서(총서기)에 처음으로 선출됐고, 베트남은 이후 국회에서 쯔엉떤상 국가주석, 응우옌떤중 총리, 응우옌신훙 국회의장으로 새 정부의 진용을 갖췄다. 언론들은 응우옌푸쫑과 응우옌신훙을 중도파, 쯔엉떤상과 응우옌떤중을 개혁파로 분류했다. 이들 가운데 국가주석이 국내 정치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국가 의례적 일만을 담당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정부의 일상적 권력은 총리에 의해 행사된다. 응우옌떤중은 2006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해오다가 2011년에 연임하게 됐다. 응우옌떤중이 총리직을 수행한 10년간은 베트남의 정치경제 권력구도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베트남에서 경제권력이 총리에게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부터 시작된 국영기업집단의 형성과정과 맞물려 있다. 베트남은 세계경제로의 통합에 대응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영기업 대형화를 추구했다. 정부는 1994년부터 몇 개의 국영기업을 묶어 총공사(general corporation, 소형 기업집단)로 전환하여 약 100개를 만들었고, 2005년부터 일부 대형 총공사를 중심으로 한국의 재벌을 벤치마킹한 국영기업집단을 시험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베트남 정부는 국영기업집단을 13개까지 만들었다가 10개로 줄였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영기업들은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의 각 부처 산하에 편재되어 있었는데, 2005년 이후에 재편된 국영기업집단은 총리 관할 하에 편재돼 총리의 경제권력을 강화했다. 2000년 이래 급성장한 민간기업들은 총리를 비롯한 정부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응우옌떤중 총리 시절에 국영기업의 부실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예컨대, 선박 건조가 주업종인 비나신의 2010년 12월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해운회사 비나라인의 부실 등 대형 국영기업의 부실들이 이어졌다. ‘이익집단’(베트남어로, 뇸러이익 nhom loi ich)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진 것도 이때였다. 이익집단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민간의 자유로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 결사들이지만, 베트남에서는 국가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 집단으로 이해됐다. 학자들은 특히 응우옌떤중 정부 시기의 베트남 정치경제체제를 ‘지대 추구’ 행위가 만연한 ‘정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라고 이해했다. 경제적 이익을 경제적 수단이 아닌 정치적 수단을 통해 획득하기에, 정경유착이 강화됐고 부패도 심화됐다.
 
숙정작업의 본격화
 
2011년 제11차 공산당대회 이후, 특히 응우옌푸쫑 총비서와 응우옌떤중 총리 간에 권력 경쟁이 본격화됐다. 응우옌떤중 총리는 국영기업 및 지방정부들과 긴밀히 협력하였고 상호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를 발전시켰다. 특히 경제부문에서 그의 전횡은 공산당 고위 지도자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했다. 이에, 응우옌푸쫑은 2012년에 응우옌떤중 총리의 견책을 도모했다. 먼저 총비서는 당시 ‘동지 X’로 불리던 응우옌떤중 총리의 견책 안건을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 부쳤고 16명으로 구성된 정치국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냈지만, 200명으로 구성된 당 중앙위원회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2012년 12월에 공산당은 반부패 숙정기관을 정부로부터 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두도록 하여 중앙내정위원회를 신설했고, 동시에 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경제위원회를 복구하여 공산당의 경제부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응우옌푸쫑 총비서가 의도한 대로 숙정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2016년 제12차 공산당대회에서 응우옌떤중은 총비서 후보로 나서 응우옌푸쫑에게 도전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를 철회했고, 응우옌푸쫑이 총비서로 선임됐다. 이후 국회가 쩐다이꽝 국가주석, 응우옌티낌응언 국회의장, 응우옌쑤언푹 총리를 선임하여 최고위 지도부 진용을 갖췄다. 응우옌푸쫑이 제12차 공산당대회에서 응우옌떤중의 총비서 후보 추대를 막을 수 있었지만, 정치국 위원들과 최고위 지도자 4인의 구성에는 어느 정도 타협해야 했다고 여겨진다. 제12기 최고위 지도자 4인은 2명씩 양 진영에 속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응우옌푸쫑과 그의 지지자들이 제12기 정치국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것은 아니었다.
응우옌푸쫑은 제12기에 숙정작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첫 표적은 당시 정치국 위원 겸 호찌민시 당위원회 비서였던 딘라탕이었다. 그는 2017년 5월에 정치국 위원 및 호찌민시 당위원회 비서에서 면직되었고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그는 2006~2011년간 페트로 베트남 회장 시절의 불법행위, 직위 남용,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2017년 12월에 체포되어 기소된 후 3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황쭝하이, 응우옌반빈 등 당시 정치국 위원과 레타인하이 전임 정치국 위원 겸 호찌민시 당위원회 비서도 견책할 것이라는 소식이 퍼졌다. 이들은 모두 응우옌떤중 정부에서 주요 직위를 역임한 인사들이었다. 응우옌쑤언푹은 응우옌떤중과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다.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2021년 제13차 공산당대회에서 쩐꾸옥브엉 당시 당 상임비서를 차기 총비서로 추대하려고 했다. 하나 당 중앙위원회 내에서 이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지 못해, 응우옌푸쫑 본인이 다시 총비서 후보로 나섰다. 총비서는 65세 이하여야 하고 재임까지만 할 수 있다는 당의 규정으로 인해, 그는 두 가지 사항에 저촉됐지만 특별승인을 얻어 3연임의 총비서로 선임됐다. 그가 추천한 후보가 총비서 후보로 추대되지 못했으나 본인이 세 번이나 총비서로 선임될 수 있었던 것은 당 정치국 및 중앙위원회에서 그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지는 않았더라도 많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13기 최고위 지도부는 응우옌푸쫑 총비서,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 팜민찐 총리, 브엉딘후에 국회의장으로 구성됐다.
 
 시진핑의 길을 걷나?
 
2022년 말과 2023년 초에 정치적 격변을 치러낸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개인 권력을 강화하고 ‘시진핑 사상’을 언급하며 자신의 생각을 마오쩌둥 사상의 반열에 올리려는 시진핑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것일까? 나는 그가 개인 권력욕이 강하여 최근 정치권력을 강화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가 개인 권력욕에 눈이 어두웠다면 2021년 제13차 공산당대회에서 처음부터 총비서 후보로 나섰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권력욕은 개인 권력욕이 아니라 공산당 권력욕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에서 그가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권력을 강화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공산당 지배체제를 강화하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논쟁적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응우옌푸쫑 총비서가 공산당 지배의 근간을 위협하는 체제를 용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부 관찰자들은 최근 베트남의 정치적 격변을 대체로 “정치화된 부패척결운동”으로 이해한다. 베트남 국민들은 부패척결운동을 지지하지만 정치권력 경쟁에는 색안경을 쓰고 볼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팜빈민, 부득담 두 부총리가 물러난 것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그들은 많은 경험을 쌓고 능력을 갖춰 국가를 위해 활약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고위 정치 지도자들 중 그들만큼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 누가 있는가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이들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의견도 나온다. 특히 팜빈민의 퇴임은 외교부문에서는 상당한 손실로 여겨진다. 미·중 간 갈등 상황이기에 그의 퇴임이 중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베트남과 중국이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소원해진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기 위해 1991년에 중국의 청두에서 회담을 가졌을 때 중국이 팜빈민의 부친인 응우옌꺼타익 당시 외교부장관을 사임시키라고 요구한 것의 복사판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은 팜빈민의 퇴임을 바랐을 것이다.
시진핑이 작년 10월 총서기로서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한 외국 지도자는 응우옌푸쫑 총비서였다. 당시 시진핑은 응우옌푸쫑을 극진히 대접했다. 미국과 중국 간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베트남이 미국에 다가가고 있었기에, 중국이 베트남에게 강한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이에 반해 외부 관찰자들은 그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 국가주석과 두 명의 실용적 노선의 부총리가 사임한 효과는 미·중 사이에서 베트남이 균형추를 중국 쪽으로 조금이라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베트남은 그간 실용적이고 균형적인 대외 정책으로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를 잘 수행해온 국가이기에, 이 균형추가 상황에 따라 또 이동할 것이지만 말이다.
 
경제부문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베트남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한국인들의 주된 관심은 2023년 베트남의 정치적 격변이 경제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다. 당장 베트남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눈에 띄며 인허가 등 여러 과정이 지체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편으로는 베트남 당국이 이러한 정치적 격변이 경제부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외국인투자가 베트남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수출의 70%를 외국인투자 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 비중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직전인 2019년에 69%로 떨어졌지만 2022년에 74%로 증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간 쌓았던 네트워크를 다시 정비해야 하는 과제도 갖게 됐다. 최근에 베트남이 FLC 그룹과 떤황민 그룹에 제재를 가했지만, 외국인투자 기업에 대한 제재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존의 협력방식을 갑작스럽게 단절할 수 없더라도, 부패척결운동을 통한 경제체제 전반의 건전화가 점진적으로나마 진행되는 것에 따른 대응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베트남 투자 기업인 ㅈ기업과 ㄹ기업의 사례를 비교한 연구가 재미있는 시사점을 준다. ㅈ기업은 ‘비공식적 협력 관계’를 지속했지만 ㄹ기업은 이를 단절했다가 손해를 보고 다시 옛 방식으로 복귀하여 호찌민시 2군에 있는 일부 구역의 개발권을 얻었다고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당분간은 두 트랙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한우 필자 주요 이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