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 통(通)]'굿바이 파파' 박항서, 마지막 베트남 여정의 닻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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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의 베트남 통(通)]'굿바이 파파' 박항서, 마지막 베트남 여정의 닻 올리다

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 입력 : 2022-12-28 10:20:22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베트남플러스(Vietnam+)]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베트남과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현재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주관하는 ‘2022 미쓰비시 일렉트릭 컵’에 출전 중이다. 이번 AFF 미쓰비시컵은 12월 20일~2023년 1월 16일까지 27일간 열리며,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 최종 우승국을 가린다. 박 감독의 임기가 내년 1월 31일 종료되는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임기 내 마지막 무대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 대회는 그동안 스즈키컵으로 불리다가 올해부터 일본 기업 미쓰비시일렉트릭의 후원을 받아 미쓰비시컵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쓰비시(전 스즈키) 컵은 지난 1996년 시작된 격년제 대회로 동남아지역 최고 권위를 자랑하며, 아세안 11개국이 전원 참가해 ‘동남아의 월드컵’으로도 불린다. 

지금까지 베트남 대표팀은 두 차례 경기를 치렀다. 먼저 21일(현지시간) 첫 번째 경기에서 베트남 대표팀은 라오스를 맞아 6:0으로 대승을 거뒀고, 27일 두 번째 경기에서는 말레이시아를 만나 3:0으로 이겼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목표는 우승이다. 박항서의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2018년 대회에서 10여년 만에 타이틀을 재차 거머쥔 바 있다. 직전대회(2020) 우승국은 태국으로, 베트남은 이번 대회에서 빼앗긴 타이틀을 되찾겠다는 포부다. 
 
◆"베트남 축구를 위해 태어난 남자...박 감독의 유산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마지막 대회가 시작되면서 베트남 현지에서는 아쉬움과 석별의 정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VN익스프레스, 징(ZING) 뉴스 등 현지 매체들은 대회 개막 직후 ‘파파 박’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됐다며 박 감독의 주요 성과와 소회, 현지 베트남인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보도를 연속해서 전하고 있다.

베트남 한 언론사의 축구 담당이자 박 감독을 수년간 취재했다는 꽝찐 기자는 “베트남 축구 팬들은 박항서 감독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어 보였다”며 “본인을 포함해 많은 베트남인들은 박항서 감독이 이끌었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 시절을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유명 연예인이자 축구 광팬을 자처하는 배우 쩐탄은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그는 힘들어하고 의욕이 없는 베트남 팀을 매우 단호하고 이기기 힘든 팀으로 바꿨다. 이제 대표팀의 경기는 항상 열정적이고 투지가 넘쳐 보인다”고 언급했다.

도안 응우옌 득 전 베트남축구연맹 재정 담당 부회장은 “박 감독이 심판이나 상대 감독과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며 “그는 마치 새끼를 보호하는 닭처럼 싸웠다. 이런 불같은 모습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그는 마치 베트남 축구를 위해 태어난 남자같다”고 평가했다.
 

박항서 감독이 '2018 아시안컵' 예멘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VN익스프레스 영문판 캡처]

응우옌 안 둑 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는 “박 감독은 선수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데 능했다”며 “몸이 작고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박 감독은 평소 선수들에게 지도했다. 또한 베트남의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자극해 선수들의 사기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하며 허물없이 지냈다”며 “외국인 감독으로 꾸짖기보다 오히려 아버지처럼 부드럽고 배려심 많은 모습으로 선수들을 격려했고, 고충을 듣고 소통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나의 위대한 스승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지 연예·스포츠 전문 매체 징 뉴스는 “이제 베트남 대표팀 선수들은 이번 AFF 컵 우승을 통해 박 감독에게 이별의 선물을 전하고자 하는 것 같다”며 “박 감독이 다져놓은 현재 베트남 대표팀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국 중 하나이며, 충분히 우승을 예상해 볼 수가 있다”고 전망했다.
 
◆퇴임 후 베트남 유소년 양성에 뜻 내비쳐..."한·베트남 친선외교에 큰 공헌"
1949일.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에 공식취임해 마지막 임기까지 박 감독이 베트남과 함께한 날짜다. 지난 5년간 박 감독은 수많은 수식어를 함께하며 베트남 축구사의 가장 화려한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17년 10월 취임 이후 1년 만에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아시안게임’ 4강, ‘2018 AFF컵’ 우승으로 역사적인 한 해를 보냈다. 특히 2018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은 일본, 시리아, 바레인 등을 차례로 꺾으며 베트남 역사상 최초이자 동남아 국가 최초로 아시안게임 4강에 진출하며 전 국민적 성원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박 감독은 ‘파파 박’, ‘쌀딩크’, ‘터이((Thầy, 선생님) 박’ 등의 칭호를 얻고 베트남의 국민적인 축구 영웅으로 부상했다.

2019년에는 아시안컵 8강에 진출함과 동시에 60여년 만에 동남아시아게임(SEA)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자국에서 열린 2022년 SEA 게임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따며 2연패의 쾌거를 이뤘다. 또 2021년에는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예선 최종라운드에도 진출했다. 최종라운드는 비록 1승1무8패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됐지만, 8차전 경기에서는 중국을 3:1로 꺾으며 다시 한번 베트남 축구의 저력을 보여줬다.

박 감독은 이제 베트남 축구의 아이콘이자 발전과 개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박 감독 취임 이후 베트남 축구가 보여준 장족의 발전은 대표팀을 넘어 축구를 통한 전 국민적 역량 결집, 시너지 효과 등 금액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각종 유무형의 가치를 창출했다고 전했다. 그가 있었던 지난 5년간 베트남의 축구는 일취월장했으며, 그의 축구 연금술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은 말 그대로 울고 웃었다. 

박 감독은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의 양국 관계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난 2020년 8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2급 노동훈장을 받았고 정부 각 부처를 비롯해 각 단체들에서 전달한 훈장과 포상만 수십여개에 달한다. 지난 5일,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주석방문에는 양국 간 우호와 친선 증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윤석열 대통령은 박 감독에게 직접 대한민국 수교훈장을 수여했다.

박 감독과 평소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고상구 K&K트레이딩(K마켓) 회장은 “그는 한국과 베트남 친선외교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며 “특유의 격의 없고 소탈한 성품으로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19 어려운 시절에도 교민사회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으며 현지 한인사회는 그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2018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뒤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VN익스프레스 영문판 캡처]

그가 베트남에 남긴 유산들은 우리가 가진 2002년 월드컵 4강의 강렬한 기억처럼 베트남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박 감독은 퇴임 이후에도 당분간 베트남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박 감독은 오랫동안 추구해 온 바람으로 그의 경력이 끝난 후 최종 단계에서 베트남 유소년 축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은 평소 현지 특파원들과도 만나 베트남 유소년 축구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의견을 자주 피력하곤 했다. 

베트남은 오는 2030년 첫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인 축구의 기반이 되는 풀뿌리 축구가 중요하다. 박 감독이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한 베트남 유소년 축구발전이 더 주목받는 이유다.

박 감독은 이번 AFF 출전 이전 마지막 대회 일정과 그간 소회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베트남 축구와 함께한 5년의 여정은 늘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베트남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과 응원 덕분에 제 역할과 책임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베트남은 저에게 기회와 영광을 안겨준 나라”라며 “본인 또한 베트남을 잊을 수 없다. 베트남 팬들의 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퇴임 이후에도 제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베트남과 한국 사이의 좋은 우정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2급 노동훈장을 수여받았다. [사진=베트남플러스(Viet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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