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끝없는 국감 자료요구 갑질에 멍드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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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끝없는 국감 자료요구 갑질에 멍드는 공무원

박기락 기자 입력 : 2022-10-30 13:56:33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9월 14일 국회의사당 정문 일대에서 '국정감사 관행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사진=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지난 24일 종합감사 앞두고 주말 야근을 위해 밤 10시에 집을 나섰다. 이제 막 잠든 어린 두 딸이 눈에 밟혔지만 끝없는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평일 근무시간 동안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달 4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감기간 동안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주말 근무와 밤샘 야근에 시달려야 했다. 감사를 명목으로 밤늦게 또는 주말에 자료를 요청하는 의원실의 잘못된 자료요구 관행은 여전했다. 

국정감사는 입법권, 예산심의권과 함께 국회가 갖는 3대 고유 권한이다. 국회는 각 해당 피감기관에 질의에 쓰일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피감기관인 정부부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료요청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의원실의 과도한 자료요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매해 국감 때마다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국감 기간에도 일부 의원실에서는 주말에 자료를 요구하면서 제출 기한을 해당 주말까지로 한정하거나 다른 의원실에서 요구한 자료를 반복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국회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을 통해 자료공유가 가능하지만, 의원실에서 자료를 공유하지 않아 불필요한 행정력 소모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주요 부처가 세종에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휴일에 공무원을 의원실로 불러 설명을 요구하면서 그날 오전에 자료 요구를 하는 의원실도 있었다.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세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국회의 역할을 알지만 물리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요구를 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피감기관 군기잡기'가 아니냐는 공무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의원실에서는 매해 국감마다 요청한 자료를 토대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국감자료집을 서너 권씩 발간한다. 하지만 정작 질의에 활용되는 자료는 일부분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사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의원실에서는 이번 국감을 준비하며 14개 중앙부처에 11개월치 공문서 파일제출을 요구했다. 한 해 중앙부처 부서당 많게는 수만 건, 적게는 수천 건의 공문서가 오가는 점을 고려할 때 수십만 건의 공문서를 자료로 요구한 셈이다.

올해는 불필요한 국감 자료 요구에 따른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국회로부터 불편·부당한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은 공무원이 이를 신고할 수 있는 '국정감사신고센터'를 운영한 것이다. 공노총은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신고 사례를 정리해 공개하고 국회 보좌진협의회에 개선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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