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경제안보 중심 新국제질서 ...지금 우리 우방은 어디인가?
Koiners다음 아주칼럼

[정성춘 칼럼] 경제안보 중심 新국제질서 ...지금 우리 우방은 어디인가?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 2021-11-01 06:00:00
  • 日 반도체소재 수출규제2년... '기술경쟁' 대대적 채비나선 기시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사용되는 일부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서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이 높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사태를 촉발시킨 대외적 환경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불러일으킨 직접적 요인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 양국 간 누적된 역사적 갈등이었지만 시야를 더 넓혀보면 미국의 압도적 패권의 약화와 이에 따른 국제질서의 혼돈이 그 배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이를 압도하려는 미국의 한판 싸움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미국의 동맹인 일본은 미국이 상대국을 제압하는 수단으로서 경제적 규제를 활용하는 것을 보았고 그 수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한국을 그 첫 시험대상으로 삼았고 그 결과가 2년 전에 벌어진 양국 간 극심한 갈등이었다. 이러한 양국 간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대외적 여건이 이러한 갈등을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10월 4일 일본의 제100대 총리로 지명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향후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의 하나로서 ‘경제안보전략’을 제시하였다. 일본의 향후 10년간 외교 및 국방 이념과 기본방침을 정한 것이 바로 ‘국가안보전략’이다. 기시다 총리는 국가안보전략을 개정하여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의지는 현재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먼저 기시다 내각에 경제안보담당장관을 새롭게 신설하였다. 초대 경제안보담당장관으로 고바야시 다카유키씨가 임명되었는데 고바야시 장관은 3선의 46세 자민당 국회의원으로 자민당 의원시절부터 경제안보와 관련된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정조회장 시절, 경제안보를 논의하는 당 조직인 ‘신국제질서창조전략본부’의 사무국장을 고바야시 장관이 담당하고 있었다. 여기에 또 한명의 인물, 즉 자민당 간사장인 아마리 아키라씨가 등장하는데 아마리 간사장은 당시 전략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처럼 경제안보에 관심과 경험이 많은 인물들이 당의 핵심요직인 간사장과 신설된 경제안보담당장관으로 발탁되면서 향후 일본의 경제안보 관련 정책들이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임이 시사되었다.

일본의 내각관방은 총리를 보좌하고 일본 전체의 전략을 짜내는 핵심기구이다. 총리 보좌관과 각종 현안을 다루는 조직들이 즐비한 중요 조직인데 여기에 고바야시 장관을 중심으로 한 경제안보 관련 새로운 조직을 설치하려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조직은 내각관방에 설치된 국가안전보장국(NSS)이며 경제안보 관련 정보수집과 분석은 국가안전보장국에 설치된 경제반이 담당해 왔다. 이번에 신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조직은 이 경제반에 경제산업성, 방위성 등 여타 정부부처의 인력을 추가하여 만들겠다는 구상이며 이를 고바야시 장관이 지휘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일본은 전통적인 외교안보분야의 조직과 경제분야 조직을 합친 새로운 경제안보 사령탑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 조직이 과연 잘 돌아갈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외교안보분야와 경제분야의 정부조직이 서로 다른 권한과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정부조직이 하나의 융합된 조직으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경제안보담당장관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질적 조직을 하나의 조직으로 녹여내고 경제안보정책의 리더로서 정부의 각 부처를 통할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정책의 추진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률적 토대를 정비해야 한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에 치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기시다 총리의 약속을 이어받은 고바야시 장관은 상기 법안을 내년 1월의 통상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자민당 시절 아마리 간사장과 고바야시 장관이 제시한 제안(금년 5월)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좀 더 구체적인 정책들도 가시화되고 있다. 아마리 간사장은 지난 10월 1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안보법안에 특허공개를 제한하는 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허는 공개를 기본으로 하는 제도인데 이 제도가 악용되어 일본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우위를 유지하는 데 특허법이 장애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외국인 유학생이나 연구자에 의한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6개월 이상 일본에 체재하는 외국인을 수용하는 대학은 사전에 경제산업장관의 허가를 얻도록 하는 제도도 새롭게 도입될 예정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중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제도이다. 가장 중요한 타깃이 중국 유학생들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6개월 이상 체재하는 외국 유학생들 중 연간 소득의 25% 이상을 외국정부가 보조할 경우 ‘외국의 영향 하에 있다’고 판단, 대학의 연구에 참여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치이다.

첨단기술개발기금을 창설하겠다는 정책도 나왔다.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국내’에서 개발하고 ‘국내’에서 보유할 필요가 있는 첨단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21년 추경예산으로 1000억엔 규모의 기금을 NEDO(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와 JST(과학기술진흥기구) 산하에 설치할 계획이다. 중국이 풍부한 연구자금을 바탕으로 우수한 연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항할 목적으로 보인다. 주로 군사용도 전용이 가능한 첨단기술인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 로봇, 반도체 등이 지원대상이며 이렇게 개발된 기술은 ‘동맹국 및 동지국과만 공유’한다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공급망 안정을 위해 해외기업의 국내유치를 위한 보조금도 정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의 유력 반도체 생산업체인 TSMC의 반도체 공장을 일본의 구마모토에 유치한 것이다. 경제산업성은 2019년부터 협상을 시작하여 유치에 성공하였는데 이는 일본의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TSMC가 생산한 반도체는 바로 인근에 있는 소니의 화상이미지센서 공장에 투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니는 화상이미지센서에서 세계시장의 50%를 점유하는 압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TSMC의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2021년 추경예산에 보조금을 편성하여 지급한다는 계획인데 이 보조금 제도는 향후 정부의 업체인정제도 도입으로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즉 정부가 보기에 생산능력, 기술력, 안정보장 상 문제가 없다는 점이 인정되는 기업을 정부가 지정하고 이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은 제1호 인정기업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조치들은 불과 요 몇 달 사이에 발생한 것들일 뿐이다. 그 이전부터 시행되어 온 다양한 조치들은 여기에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다. 미국에서 하고 있는 조치들을 보면 어떤 조치들이 사용되고 있고 또 사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이런 조치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일본이 대대적으로 체제정비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동맹국, 동지국에 과연 한국이 포함되어 있는지 불투명하다. 한국의 유학생이 일본의 이공계 대학에서 연구를 하려 할 때 일본의 대학이 한국학생의 유학 자체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까? 정경분리를 원칙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해 온 한·일 경제관계가 정경일치와 경제안보로 치닫고 있는 국제환경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기술독립하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활용 가능한 기술이 있다면 관계개선을 통해 써먹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경제안보를 바탕으로 새롭게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 하나라도 더 많은 우방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한·일관계의 개선이 시급한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니겠는가!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