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당신이 거길 왜"…성추행 무고 사건이 불붙인 임산부 배려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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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돋보기] "당신이 거길 왜"…성추행 무고 사건이 불붙인 임산부 배려석 논란

홍승완 기자 입력 : 2021-09-13 16:21:09
  • 장애인 남성,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뒤 여성과 언쟁 끝 성추행범으로 몰려

  • 시행 7년 넘었어도 갈등 불씨 여전…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 월평균 730건

  • 비워두기 vs 비켜주기? 서울교통공사 "기조는 '비워두기'지만, 강제성은 없어"

  • 전문가들, 임산부 배려석 둘러싼 갈등 원인은 '나만 손해 본다'는 인식

서울지하철에 설치된 임산부 배려석 [사진=연합뉴스]
 

임산부 배려석이 시행된 지 7년을 넘었지만, 좌석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한 장애인 남성이 여성 승객과 말다툼 끝에 성추행범으로 몰린 사건이 알려지면서 '앉을 수 있는 자격'을 두고도 논란이 되는 모양새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를 위한 자리면서도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좌석이기 때문이다.

13일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에 따르면 뇌하수체 종양으로 저혈압과 부정맥을 앓고 있는 남성 A씨는 지난 4월 서울지하철 4호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당시 열차 안의 장애인·노약자석이 만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여성 승객 B씨는 A씨를 콕 집어 "아저씨가 앉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B씨의 저격성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B씨는 자리에 앉은 뒤에도 다른 승객들이 들을 정도로 A씨를 향해 "재수 없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A씨가 임산부 배려석에서 일어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B씨가 경찰에 A씨를 신고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사진=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갈무리]

A씨는 신고 상황을 증거로 남겨두기 위해 카메라 영상 녹화 기능을 켜 렌즈를 막은 뒤 녹취했다. 그러자 B씨는 경찰에 "A씨가 도촬(불법 촬영)까지 하고 있으며, 오른쪽 팔꿈치를 잡아 추행했다"고도 진술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는 A씨와 B씨 사이에 욕설은 오가지 않았으며 신체적 접촉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또 승강장 폐쇄회로(CC)TV에도 추행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A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임산부 배려석…비워둬야 하나? 비켜줘도 될까?
교통약자인 장애인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뒤 경찰조사까지 받은 일이 알려지자 누가 교통약자인지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임산부를 위해 '비워두기'를 해야 한다는 입장과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비켜주기'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모양새다. 다시 말해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어긋난 인식이 갈등을 부르는 시작점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에 열린 '전국 대학생 인구토론대회'에 따르면, '비워두기' 찬성 측은 "'비켜주기'는 임산부들이 배려석에 갈 때마다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겨 오히려 임산부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켜주기' 찬성 측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는 강제성은 반드시 갈등을 유발한다"고 반박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비워두기와 비켜주기 중 어느 쪽이 맞을까. 서울교통공사는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두기'가 맞다"고 했다. 다만 이를 강제할 규정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공사 관계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에게 비켜달라고 말하지 않고도 임산부가 편하게 앉을 수 있게 '비워 두기'를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또 "비워 두기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할 계획이며 대중교통에서 임산부를 배려해달라는 임산부 '표식'인 분홍색 배지도 눈에 잘 띄도록 관련 협회와 노력해 임산부 배려 문화가 확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나만 손해 본다'는 인식이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非)임산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특히 남성들은 폐지된 군 가산점과 비교해 여성들만 혜택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임산부 배려석 색이 남녀 갈등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혜영 창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색 자체가 주는 고정관념이 있다. 좌석에 분홍색을 쓰면 성별 이슈로 넘어가는 측면이 있어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징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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