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 감독이 뽑은 별별 명장면] 가장 한국스러운 '캐비닛' 속 세계
Koiners다음 영화

[이경미 감독이 뽑은 별별 명장면] 가장 한국스러운 '캐비닛' 속 세계

최송희 기자 입력 : 2020-10-24 00:01:00
  • *다음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사진=넷플릭스 제공]

*다음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기억하는 작품 속 최고의 명장면은 무엇일까? 그들이 직접 고른 장면을 씹고, 뜯고, 맛본다. '별별 명장면'은 배우가 기억하는 영화 속 한 장면과 그 안에 담긴 의미,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하는 코너다. 이번 주인공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경미 감독이다.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2015년 출간돼 아직까지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로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보건교사 안은영' 오프닝에 등장하는 캐비넷은 사실 해외 시청자들을 노린 장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특징들을 포인트 삼아서 재미있게 만화적으로 표현해보려고 했거든요."

'보건교사 안은영'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신은 참으로 강렬하다. 보건교사 가운을 입은 안은영은 십자가부터 묵주, 염주, 부적 등이 담긴 캐비닛을 찬찬히 둘러보며 남을 도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관해 설명한다.

'보건교사 안은영' 오프닝에 등장하는 캐비닛[사진=넷플릭스 제공]


이경미 감독이 언급한 대로 '보건교사 안은영'의 오프닝 장면은 많은 해외 시청자들의 이목을 단번이 잡아끌었다.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한 아이템들과 '샤머니즘'이 결합해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특징 중 하나가 '사이비 종교' 같아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부분 중 하나죠. 해외 시청자들에겐 그런 점들이 흥미로운 요소일 거로 생각했어요. 캐비닛 안에 세계 여러 나라 소품들이 들어가 있고 잡신들을 모시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거라고 본 거죠."

이경미 감독은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곳곳에 흥미 요소들을 심어두었다.

"해외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생각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제가 해외 영화제에서 칭찬받았던 것들, 남편(이 감독은 아일랜드 출신 영화 평론가 피어스 콘란과 지난 2018년 결혼했다)이 신기해하며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죠. 그런 장면들은 의식하고 조합해서 넣어보았어요."

캐비닛 안에 온갖 종교의 아이템이 담겨있는 모습부터 수산 시장의 풍경, 옥상에서 '죽음'을 지켜보며 열광하는 아이들과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악까지. 해외 시청자들은 '충돌'하는 조합과 이미지에 열광했다. 그의 남편 피어스 콘란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요소였다.

"남편이 '보건교사 안은영' 에피소드 1을 보고 정말 좋아했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역시 넌 내 남편이구나!' 하하하."

이경미 감독은 같은 이유로 '음악'도 한국적인 요소로 채우려고 했다. 영화 '전우치' '곡성' '부산행' 등은 물론 최근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판소리 밴드 이날치의 프로듀싱을 맡은 장영규 음악감독과 함께했다.

초반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꺼비 젤리의 등장 신에서는 전래동요 '두껍아 두껍아'를 이용했고, 방석 사냥 장면에서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샘플링하는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다채로움을 더했다.

"가장 처음 음악감독님께 말씀드린 건 '사람 목소리가 많이 들어가면 좋겠다'라는 점이었어요. 현실에 없는 세계를 보여주니까 사람 목소리가 많이 들려서 밸런스를 맞추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6부는 합창까지 넣었어요. 음악감독님이 가진 B스러움이나 키치한 매력이 이번 작품을 통해서 폭발한 셈이에요."

이경미 감독의 예상대로 '보건교사 안은영'은 해외 시청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밈(Meme·유행 요소를 응용해 만든 사진이나 동영상)' 문화의 중심이 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지난 9월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으며 총 6부작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