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2-6] 음악에서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Koiners다음 기명칼럼

[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2-6] 음악에서도 무궁화는 피지 않았습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 2019-05-02 09:00:00
  • 하늘에서 내려온 '낙하산 꽃' 무궁화

  • 일본 국정교과서 ‘애국가 급’ 동요의 동영상 배경은 무궁화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쇼펜하우어>

"음악은 나라의 정신적 기틀이다. 백성이 음악을 하고 나서 성인이 제도를 정했으니 백성의 민요를 천시해서는 안된다." <정약용, 『악서고존』>

"음악은 국민이 만든다. 작곡가는 그것을 배열할 뿐이다."

"흰 바탕에 빨강 히노마루(日の丸)가 물들인다. 아아 갓 만든 거 일본의 깃발은."
<무궁화를 배경으로 한 일본소학교 1학년 국정음악교과서 <히노마루의 기> (2016년 제작 유튜브)>

"꽃나무로 위장한 일장기와 욱일기 – 무궁화의 한국 나라꽃으로 신분 세탁은 일제의 神의 한수." <강효백 교수>



2585곡의 민요에 무궁화는 단 한 소리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앞에서 우리는 시각과 공간의 예술 미술에서 단 한 송이 무궁화도 찾지 못했다. 이제 청각과 시간의 예술 음악에서 찾아보자. 기존 국내 자료에서 민족의 꽃이라는 무궁화를 음악의 장르중에서도 민족적 고유성을 잘 간직하고 있고 기층적 삶과 직접 연계되어 있는 민요에서 찾아보자. 민요는 우리 민족의 삶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우리의 거울과도 같은 소리 예술이 아니던가.

하응백의 국악가사 백과사전 『창악집성』을 펼쳐보았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하략)
<정선긴아리랑> - 하응백 편, 「창악집성」, 2011.


해당화도 피고 동백꽃도 떨어지며 정선의 긴아리랑은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데, 무궁화는 피어나기는커녕 흔적도 없다. 뿐만 아니다. 가곡, 가사, 시조창, 경·서도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좌창, 잡가, 단가, 가야금병창, 송서, 불가, 재담소리 등 판소리를 제외한 현재 가창(歌唱)하는 국악의 가사를 집대성한 「창악집성」을 샅샅이 훑어보았으나 무궁화는 단 한 소리마디도 없었다.

다시 「창악집성」이 제외한 판소리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끼타령」·「적벽가」·「배비장전」·「강릉매화타령」·「옹고집전」·「변강쇠타령」·「장끼타령」·「무숙이타령」·「가짜신선타령」 등 12마당의 판소리곡을 깡그리 훑어보았으나 무궁화는 없었다.

성안에 석류꽃은 성 밖으로 향해 피고/ 쟁반 같은 해바라기 해를 향해 절을 하고/
보기 좋은 함박꽃은 실산치로 피어나고/ 주묵 같은 목단화는 어사용에 피어나고/
도리지화 매화꽃은 기화일치 피어나고/ 도리납작 파리꽃은 청파용에 피어나고/
봉실봉실 봉숭아꽃은 사람하고 희롱하고/ 칠팔월 다래꽃은 수용새용 피어나고/
구시월 국화꽃은 충효열녀 절을 지키고/ 광무하상 찬바람에 저마 홀로 곱기 핏네.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 1995, 경북 성주>


또 다시 문화방송의 <한국민요대전> 음반자료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2585곡의 민요를 검색해보았다. 그야말로 <홍보가>의 ’화란춘성(花亂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봄이 되니 모든 것이 피어나고, 만발한 만 가지 꽃에 취하는 것처럼 오만가지 꽃이 만발했는데 무궁화는 단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동화작가 이상희의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에서야 무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 불렸던 민요 가운데 〈뱃노래〉 〈사발가〉 〈아리랑타령〉 〈창부타령〉 〈이앙가〉 〈회혼가〉 〈정선아리랑〉 등에도 무궁화가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나마 구한말 이전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불렀다던 상기 8개의 민요를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무궁화는 아무 데도 없었다. 혹시 이 책을 쓴 이가 동화작가이니만 동화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정선역을 지나는 무궁화호 열차를 무궁화 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 하늘에서 내려온 '낙하산 꽃' 무궁화 

(구한말 이후 현재까지 한국내 자료에서만) 반만년 민족의 꽃이라는 무궁화의 소리를 찾기 위한 거라면 어디를 못가랴! 서민층을 떠나 상류층으로 올라가보자. 무궁화를 「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고려사·악사(樂史)』을 비롯, 옛 우리 음악관련 문헌을 모조리 검색했다. 무궁화는 민간상류층이 향유하는 시조나 가사 등 풍류음악 내지 귀족음악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서 다시 더 올라가 아악, 당악,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궁중의 연례악인 궁중음악에서도 무궁화는 단 한 음절 단 한 소절도 없었다.

그런데 맨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거짓말처럼 ‘무궁화’를 알현할 수 있었다. 반만년 한민족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음악과 노래와 소리에 단 한 음절 단 소절도 없던 무궁화가 ‘애국가’란 지존의 최정상 국가음악 속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다시 마지막으로 밤을 하얗게 새워 유엔 회원국 193개국 국가(國歌)가사를 전수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나라꽃, 또는 준(準)나라꽃은 물론 특정 꽃 이름이 나오는 가사는 한국의 ‘무궁화 삼천리’가 유일무이했다.

세상에, 낙하산도 이런 ‘대왕 낙하산’이 다 있나! 맨 밑바닥 민속음악에서부터 귀족음악, 궁중음악에 올라갈 때까지 단 한 음절도 없던 무궁화가 맨 꼭대기의 국가음악에 자리잡고 있다니.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일본이름: 이토지코, 종일매국노의 대부, 일본제국회의 귀족원 의원, 父子가 『친일인명사전』에 게재된 유일한 인물)에 이어 국가음악으로 등극시킨 대표적 인물은 박정희(일본이름: 다카키 마사오, 오카모도 미노루) 전 대통령이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 져도/ 유구한 우리 역사/ 굳세게도 살아 왔네/ 슬기로운 우리 겨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나의 조국」은 일본의 엔카풍 음계를 갖다 쓴 왜색가요나 다름없다. 그는 무궁화를 거의 본능적으로 좋아하여 무궁화 장려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며 두 딸의 이름을 근혜와 근영으로 지었다.

그런데 일본인에는 무궁화 이름뿐만 아니라 한국인에는 없는 무궁화 ‘槿’성이 2개나 있다. - 무쿠케 ‘槿(むくげ)’ 와 무쿠케하라 ‘槿原(むくげはら)’

◆일본 국정교과서 ‘애국가 급’ 동요의 동영상 배경은 무궁화

이왕 일본 무궁화 이야기와 나왔으니 일본 음악에서의 무궁화를 살펴보자

일본의 무궁화 노래는 일찍이 일본의 3대 전통 가집(歌集)인 『만엽집(萬葉集)』(7세기~8세기)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905년) 『신고금화가집(新古今和歌集)』(1205년)에서 흘러나온다.
 

야마(富山)현 오야베(小矢部)시 근교에 세워진 꽃무궁화 와카 시비 9세기 헤이안시대 건립 추정.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특히 「고금화가집」에 실린 ‘꽃무궁화와 벌거숭이 아이(花木槿裸童)’의 와카(和歌, 단카短歌라고 칭함) 31자를 새긴 시비가 도야마(富山)현 오야베(小矢部)시 근교에 세워져 있다.

일본 메이지(明治, 1868~1912)와 다이쇼(大正, 1912~1926) 두 시대를 연이어 대표하는 유명한 단카 시인 사이토 모키치(斎藤茂吉,1882~1953)의 출세작도 바로 ‘흰무궁화(白木槿)’다.

어디 그뿐인가? 1938년 10월 히로시마에선 ‘무궁화 단카회(むくげ短歌会)’가 발족돼 무궁화 단카 전문 월간지를 창간했다. 2019년 현재에도 매월 무궁화 노래집을 출간하는 ‘무궁화 단카회’는 1998년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무궁화 단카 1000수를 모은 특집도 펴낸 바 있다. 일본의 유명한 여자 가수이자 배우인 가토 도키코(加藤登紀子)의 대표곡 ‘무궁화’를 비롯한 가곡 유행가 관현악 오페라 재즈 등에다 단카를 포함한 일본 무궁화 노래의 수는 가 수천 곡이 넘는다.

그러나 단연 압권은 일본 애국가급(級) 동요인 ‘히노마루(日の丸)의 기’(1)*이다.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병탄한 이듬해 1911년 5월 (메이지 44년) 일본제국 문부성 국정교과서 소학교 1학년 음악교과서(2)* 맨 앞 부분의 ‘히노마루의 기’ 즉 일본의 국기 일장기를 예찬한 국정(國定) 동요이다. 엄밀히 말해 일본 공식 국가인 ‘기미가요(きみがよ)’는 일본 군주 예찬가이고 ‘히노마루의 기’는 일본 국가 찬양가다. 즉 기미가요가 일본의 ‘국가(國歌)’라면 히노마루기는 일본의 ‘애국가(愛國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일본 국정 문부성 음악교과서 소학교 1학년 <히노마루의 기> 악보와 무궁화 배경이 눈길을 끈다. (2016년 제작 유튜브).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흰 바탕에 빨강 히노마루(日の丸)가 물들인다. 아아 갓 만든 거 일본의 깃발은(白地に赤く 日の丸染めて、 ああうつくしや、日本の旗は)."

"아침 해가 솟는다 내게 너의 힘을 보여달라 아아 용감하여라 일본의 깃발은(朝日の昇る 勢見せて、 ああ勇ましや、 日本の旗は)."


일본 국정 교과서상의 음악 즉 일본 국가음악이자 ‘애국가급’ 대표 동요 <히노마루의 기>의 2016년 제작 유튜브 동영상 배경이 바로 무궁화이다.

왜 무엇 때문에 일본은 무궁화를 이토록 애지중지 귀하게 대접할까?

이에 대한 답을 아래와 같은 두 반문으로 대신할까 한다.

Q1. 아래 두 사진은 각각 ‘히노마루 국기’와 ‘히노마루 무궁화’ 다. 어느 쪽이 ‘붉은 해(日)를 실은 배(丸)’ 같아 보이는가?

Q2. 일본의 모든 동식물 중에서 품종명에 히노마루(日の丸)가 붙은 건 무궁화가 유일하다. 히노마루 국기가 먼저일까? 히노마루 무궁화가 먼저일까?”
 

‘히노마루 국기’와 ‘히노마루 무궁화’.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주석
(1)*<히노마루의 기> 유튜브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AgabGsLUd78

(2)*메이지(明治)44년(1911년)5월 심상(보통일반)소학교창가 1학년용(尋常小学唱歌 第一学年用) ‘히노마루 기 (日の丸の旗) 작사자 타카노 타수유키 (高野辰之) 작곡자 사다유키 오카노 (岡野貞一), 1941년 일부 가사를 제국주의 노골화로 개작했다. 1945년 2차세계대전 패전후 가사를 약간 바꾼 이 국가 지정동요는 2019년 현재 1억2800만 일본인의 인구에 불리고 있을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