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과도한 긴축 아냐" 파월 발언 3일 만에 SVB 파산…연준 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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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과도한 긴축 아냐" 파월 발언 3일 만에 SVB 파산…연준 책임론↑

윤주혜 기자 입력 : 2023-03-14 16:00:29
  • 금리 동결 목소리 커져

  • 전 세계 금융주 줄줄이 하락…빅뱅크로 뭉칫돈 몰려

[사진=EPA·연합뉴스]

“우리가 과도하게 긴축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는 없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이처럼 말하며 ‘더 빠르고 더 높은 금리 인상’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해당 발언을 한 지 단 3일 만에 실리콘밸리은행(SVB)은 파산했다. 하루는 ‘디스인플레이션’, 하루는 ‘빅스텝’을 주장하는 연준의 일관성 없는 인플레이션 억제 전투가 금융 불안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리 동결 목소리 커져
13일 월가 기관들은 잇달아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SVB 파산 사태 전만 해도 월가에서는 3월 ‘빅스텝’이 대세였다. 연준이 3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를 인상해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줄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빅스텝 가능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들은 일주일 전만 해도 연준이 3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를 올릴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이제는 ‘금리 동결’에 무게를 둔다. 2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65bp(1bp=0.01%포인트) 떨어지며 1986년 검은 월요일 폭락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연준이 앞으로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긴 어려울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금리 인상 전망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배경에는 일관성 없는 연준의 태도가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당시 ‘디스인플레이션’을 언급하며 연준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예고했다. 하지만 얼마 뒤 충격적인 고용지표와 물가지표가 연달아 나오자 다시 ‘속도’를 언급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청문회에서 “이는 최종적인 금리 수준이 이전에 전망한 것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만약 지표 전반이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단언했다.
 
실제 일주일 전만 해도 주택 부문의 급격한 둔화 외에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이렇다 할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나 SVB가 갑작스럽게 붕괴하면서 판이 바뀌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은행에 대한 신뢰성이 바닥을 쳤다. 뱅크런 우려에 은행들은 앞으로 대출을 늘리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의 자금난을 더 압박할 수 있다.
 
이제 연준은 금융 안정과 인플레이션 억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계속 매진할 것이란 의견과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란 의견이 맞선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영국발(發) 금융 혼란이 발생한 지난해 10월 연설을 통해 “우리는 금융 안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통화 정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며 “통화정책 초점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데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에 비춰보면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번 미국 당국의 신속한 구제 조치가 인플레이션 억제 전투가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는 평도 있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당국의 조치는)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기조를 추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며 “목표가 여러 개라면 도구도 여러 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물 건너 갔다는 예상도 나온다. 에릭 로젠그렌 전 보스턴 연은 총재는 “미국 경제의 시스템적인 문제가 우려된다면 금리를 왜 올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관건은 이번 SVB 파산 사태의 여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냐다.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들은 3월 금리 동결을 예상하면서도 SVB 문제가 해결되면 향후 몇 차례 더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봤다. 반대로 여진이 계속된다면, 금리 인상 가능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 역시 3월 금리 동결을 전망하면서도 5·6·7월에 0.25%포인트씩 올릴 가능성을 열어뒀다. 골드만삭스는 “연준 관리들이 당장은 금융 안정을 우선할 것”이라면서도 “그들은 금융 안정을 긴급한 문제로 보고, 높은 인플레이션은 중기적인 문제로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블룸버그TV에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 목표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연준이 다음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것이 여전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촉구했다.
 
전 세계 금융주 줄줄이 하락···빅뱅크로 뭉칫돈 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신의 예금은 안전하다”며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전 세계 금융주는 파랗게 질렸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금융주 시가총액은 단 이틀간 약 4650억 달러(약 606조원)나 증발했다. 이날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 주가가 60% 넘게 폭락하는 등 미국 주요 은행 시가총액은 약 900억 달러 증발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STOXX 은행 부문은 5.7% 밀렸고,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12.7% 하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9.6% 급락하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마감했다.

MSCI 아시아·태평양 금융지수는 장중 3.1%나 하락하면서 지난해 11월 29일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일본 증시에서 8.6%나 밀렸고 호주 안츠그룹홀딩스는 1.5% 하락했다.

미국 규제 당국이 비보험 예금까지 보호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뱅크런 불안감이 확산하며 뭉칫돈이 ‘대마불사’ 빅뱅크로 몰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앤코로 최근 며칠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이 예치되는 등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로 시중자금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시그니처 은행의 후순위채와 장기 발행자 등급을 Baa2에서 C로 강등하면서,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 자이언스 뱅코프, 웨스턴 얼라이언스 등 6개 미국 은행 등급을 내리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산 은행 예금주들은 돈을 못 찾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SVB 본사 밖에는 예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새벽 4시부터 몰렸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직원들은 “평소처럼 업무를 처리하라. 업무량이 많아서 단지 시간이 더 걸릴 뿐”이라며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SVB 사태 여진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인플레이션 전투를 계속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은 3월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무게를 뒀다. 블랙록 역시 금리 인상이 계속될 것으로 봤다.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연준이 3월에 베이비스텝을 단행한 뒤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으로 점쳤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헤지 펀드 시타델 설립자인 켄 그리핀은 미국 당국의 은행 구제책을 비판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하면서 “(미국 자본주의가)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면서 미국 당국이 비보험 예금까지 보호하기로 한 조치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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