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방패' 무너질라…대만도 칩4 가입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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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방패' 무너질라…대만도 칩4 가입 '딜레마'

베이징=배인선 특파원 입력 : 2022-08-09 14:44:57
  • 美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

  • 거부하면···美, 대만 반도체 '때리기' 우려도

  • TSMC, 美·中 사이에서 '신중한 줄타기'

전 세계 파운드리 1위 TSMC [사진=NNA]

"'칩(Chip)4'로 중국 제압하려는 미국, 대만 반도체를 미국으로 옮기면 '실리콘 방패' 와해될 수도"

대만 현지 매체인 연합조보가 지난 7일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대만의 첨단 반도체 기술력은 그동안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도록 만드는 '실리콘 방패'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만 반도체 전·후방 산업 선두기업들이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해 산업 밸류체인에 균열이 생겨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진다면, 미국이 과연 대만을 보호할 것인지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대만의존도 낮춰라" 美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
미국은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자국 반도체 공급망을 재건하기 위해 520억 달러 규모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포함한 ‘반도체 지원법안’을 내놓고, 자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대만을 묶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이른바 '칩4'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한때 반도체 제조강국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분업체계 속 최첨단 설계·기술력만 손에 쥐고, 나머지 반도체 생산의 80%를 아시아 지역에서 조달해왔다. 특히 미국의 대만 반도체 의존도는 90%에 달한다고 연합조보는 집계했다. 

그런데 미·중간 전략적 경쟁으로 국제 분업체계가 흔들리고, 특히 최근 대만해협 위기를 통해 반도체 산업이 대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미국은 깨달았다. 반도체 굴기를 꾀하는 중국이 대만과 통일하면 대만 반도체 산업을 통째로 삼킬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미국의 기술 봉쇄에도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세는 위협적이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생산력은 이미 한국과 대만을 뛰어넘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1~2024년까지 4년간 중국이 신설하기로 계획한 반도체 공장 숫자가 31곳이다. 같은 기간 대만(19곳)과 미국(12곳)을 압도한다. 

미국이 칩4 동맹과 반도체 지원법안을 내세워 중국을 배제한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건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칩4' 거부하면···美, 대만 반도체 '때리기' 우려도
현재 대만 정부는 "미국 칩4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비로소 국가 이익에 따라 참여할지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대만 공상시보는 8일 보도했다. 다만 대만 경제부가 그동안 미국과 반도체 정보 자원을 공유하고 공급망 협력을 논의해왔던 만큼, 칩4 가입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만 내에서는 미국의 칩4 동참 압박 등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옌전성(嚴震生) 대만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중심 연구원은 연합조보에 "미국의 경쟁력은 연구개발·혁신에 있지, 제조엔 능하지 않다"며 "미국이 반도체 공급체인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은 대만의 공급망 균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데, 대만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궈정량(郭正亮) 대만 민주진보당(민진당) 전 입법위원이자 문화대 국제기업관리학 부교수도 "줄곧 정부 산업정책 개입에 반대하던 미국 양당이 최근엔 중국의 산업 지원 보조금 정책을 배워 자본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런데 미국이 자체적인 저력이 부족하니 대만·한국에 강온책을 쓰고 있다"며 "보조금으로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유도하는 한편, 칩4에 가입해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척할 것을 요구해 한국과 대만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압박을 거부했다간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궈 부교수는 "1980년대 일본 반도체 경기가 호황일 당시 미국이 일본 반도체를 무너뜨렸던 것처럼, 현재 대만·한국이 각각 시스템반도체, 메모리반도체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과거의 역사를 반복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만약 대만·한국이 미국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일본과 연합해 세계 양대 파운드리 업체인 한국 삼성과 대만 TSMC 때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이 미국의 요구대로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과 거래를 끊어도 대만 경제에 피해가 크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의 대중국 무역흑자는 1716억 달러다. 이 중 반도체 중심의 전자부품 항목의 무역흑자만 1043억 달러였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건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도 나온다. 연합조보는 "TSMC가 연간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액수가 400억 달러인데, 미국 반도체법이 지원하는 보조금은 520억 달러 남짓"이라며 "제한적인 보조금과 세제 혜택 만으로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건하고 주도권을 되찾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장중머우 TSMC 창업주도 "미국은 제조업 인력이 없어서 반도체 제조비용이 대만보다 50% 비싸다"며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놓고 "비용 낭비이자 헛수고"라고 꼬집기도 했다. 
 
TSMC, 美·中 사이에서 '신중한 줄타기'
상황이 이러하니 가장 곤란한 처지에 놓인 건 TSMC다. 장중머우 창업주가 3년 전 예언했던 "TSMC가 지정학적 병가필쟁지지(兵家必爭之地)가 될 것”이란 말이 현실이 된 셈이다. 

TSMC는 미국의 '칩4' 동맹이나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재건에 모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만을 방문해 TSMC 창업주, 회장 등과 비밀리에 만나 반도체 협업을 논의한 배경이다. TSMC는 2020년에 이미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를 들여 5나노 공정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도 했다. 

물론 대만이 '칩4' 동맹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칩4는 정부 간 협력체인 만큼, 대만 정부가 TSMC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긴 힘들다. 현재 TSMC 전체 지분에서 대만 정부 지분율은 6.4%에 불과하다.

다만 TSMC는 외국기관과 해외투자자 지분이 78%로, 최대주주는 미국 시티은행(20.5%)이다. 게다가 상위 10대 고객 중 7명이 미국 고객이며, 반도체 장비 등도 주로 미국서 수입한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정치적 압력에 저항하기 힘든 구조다.

하지만 동시에 TSMC로선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시장인 중국도 무시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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