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판례 폐기 이후...기록 삭제부터 경비 지원까지 고심 커지는 美기업

권성진 기자 입력 : 2022-07-04 18:00 수정 : 2022-07-04 18:00:00
빅테크·어플 기업 "정보 노출 막아 이용자 보호할 것" 낙태 시술 경비와 근무지 변경까지 지원하겠다는 기업 등장 주(state) 법률 위반으로 소송 당할 우려 존재
권성진 기자 2022-07-04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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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미시시피주 한 산부인과 입간판의 모습. 해당 산부인과는 미시시피주에서 유일하게 낙태가 허용된 곳이다. [사진=AP·연합뉴스]

낙태권을 둘러싼 혼란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구글 등 IT기업들이 낙태 클리닉 방문 기록을 삭제하고, 주요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낙태 시술 경비를 지원하는 등 낙태권 보호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주정부나 낙태 반대 단체들이 이들 기업을 고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빅테크·앱 기업 "정보 노출 막아 이용자 보호할 것"
로 대 웨이드 판결이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제인 '로'라는 가명의 여인이 댈러스카운티 헨리 웨이드 검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 나온 판결이다. 대법원은 1973년 미국 수정헌법 14조 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임신 28주까지는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낙태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사건 당사자의 성을 따서 해당 사건은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불린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49년 만에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파기했다. 사무엘 알리토 미국 연방대법관은 판결문을 통해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고 그런 권리는 헌법상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지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이후 미국 시민사회에는 즉각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낙태와 임신 주기 등 정보 노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사용자의 정보가 기록되는 빅테크 기업은 관련 정보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구글은 낙태 클리닉 방문 기록 등 민감 데이터를 자동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난임 센터, 체중 감량 클리닉, 성형 클리닉 등에 대한 방문 기록도 삭제한다.

젠 피츠패트릭 구글 수석 부사장은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개인 정보 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계속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AP 통신은 "구글의 이런 약속은 정부 당국과 외부로부터 더 많은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글 외에 다른 IT 기업들도 사용자의 정보 보호에 나섰다. 미국의 여성들은 생리 주기를 파악하기 위해 플로(Flo), 클루(Clue) 등 여러 앱을 사용한다. 이번 판결이 나온 뒤 해당 앱이 보유한 정보가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들 회사는 이용자의 데이터를 익명으로 만들 방법을 찾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처음 승인받은 피임 앱인 '내추럴 사이클스'(natural cycles)는 이용자들을 완전히 익명화하도록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내추럴 사이클스는 "목표는 우리조차도 이용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는 기술적인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사용하는 또 다른 앱인 플로도 조만간 '익명 모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용자들은 해당 기능을 이용해 자신의 계정에서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IT기업들이 더 강력한 개인정보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아 파울러 휴스턴 대학교 공공법 정책 연구소 연구소장은 "때때로 앱의 서비스 지원팀에 직접 연락해 과거 데이터가 삭제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시술 경비와 근무지 변경까지 지원하겠다"
일부 주요 기업들은 낙태 경비를 지원하거나 낙태가 가능한 지역으로 인사이동을 하는 등 낙태권을 보호하는 데 매우 적극적인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대법원판결이 나온 당일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7월 1일부터 거주지에서 낙태를 포함한 모든 의료 수술·처방·검진을 받을 수 없는 직원들에게 경비를 보전해 주는 조치를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직원만 17만명인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 역시 낙태 시술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JP모건 체이스의 대변인은 지난 6월 1일 낙태를 포함한 의료 서비스를 위해 50마일 이상 이동할 경우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워너브라더스와 디즈니 등도 낙태를 위한 경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너 브라더스 대변인은 "우리는 즉시 의료 혜택 옵션을 확대해 낙태 치료를 위해 떠나는 직원과 그 가족의 교통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즈니 인사 책임자인 폴 리차드손과 파스칼 토마스는 "이번 판결이 많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비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나이키, 스타벅스, 마스터카드, 우버,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낙태 치료를 위한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렌트 하이더는 지난 5월 12일 소셜미디어 슬랙에 직원들이 원하면 낙태가 합법인 지역으로 근무지를 바꿔주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직원들이 현재 거주하는 주에서 (낙태 등) 중요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이 걱정된다면 경비를 제공하겠다”며 “직원들을 (낙태가 합법인 주로) 재배치(relocate)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주(state) 법률 위반으로 소송당할 우려 존재
그러나 이들 기업의 낙태 시술 지원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낙태를 금지한 주 정부와 의회는 물론이고 낙태 반대 단체들이 낙태 경비를 지원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의료법 전문가인 로빈 프렛웰 윌슨 일리노이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소송 제기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딸을 데리고 주 경계를 넘은 개인이 고소당할 수 있듯이 아마존 등 기업들도 얼마든지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낙태 금지법을 시행한 텍사스주에서는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원정 낙태 시술 지원 기업들을 겨냥해 영업 활동 금지 등 불이익을 부과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아울러 낙태를 금지한 주들이 원정 시술 지원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형법을 제정할 경우 기업들이 형사 고발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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