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군인 조롱' 위문 편지 논란에 10년 전 받은 위문 편지를 꺼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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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돋보기] '군인 조롱' 위문 편지 논란에 10년 전 받은 위문 편지를 꺼내 보았다

홍승완 기자 입력 : 2022-01-13 17:46:23
  • 서울의 한 고등학교가 진행한 위문 편지 행사에 일부 학생이 '군인 조롱' 내용 담아 보내

  • 학교 측 "행사 본래 취지가 심하게 왜곡된 점 매우 유감"…부대에 사과할 것으로 보여

  • '위문 편지' 논란을 계기로 靑 국민청원엔 "여고서 강요하는 위문편지 금지해달라" 글 올라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서울의 한 고등학교가 학생들에게 군 장병 위문편지를 쓰도록 했으나 일부 학생이 군인을 조롱하는 내용을 보내 논란입니다. 편지를 받아 본 장병은 편지를 받고 난 뒤 "오히려 의욕이 떨어지고 속상하다. 차라지 쓰질 말지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학교 학생들은 정성 들여 위문편지를 쓴 학생들도 있으나 일부 편지만 논란이 됐다며 모든 학생이 군인을 조롱하는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비쳐 아쉽단 입장입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엔 한 여고생이 지난달 30일에 쓴 것으로 보이는 위문편지 내용이 공개돼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공책을 반으로 찢어 쓴 편지엔 "군 생활 힘드신가요? 그래도 열심히 사세요 ^^ 저도 이제 고3이라 죽겠는데 이딴 행사 참여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사세요"란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라며 군인을 조롱하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다른 장병이 받은 편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 여학생은 편지에 "아름다운 계절인 만큼 군대에서 비누는 줍지 마세요"라고 썼습니다. 여기서 "비누를 줍는다"는 표현은 군대 내 동성 간 성폭행을 뜻하는 은어로, 성희롱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위문 편지를 본 누리꾼들 사이엔 본인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에 대한 학생들의 조롱이 도를 넘었단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부 누리꾼은 "군인에 대한 예우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학교 학생들은 무례한 편지만 부각돼 아쉽단 반응입니다. 이 학교 재학생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2시간 동안 열심히 쓰거나 꾸미고, 그림까지 그리는 애들이 많았다. 근데 일부 학생들이 막 쓴 것만 화제가 돼 억울한 심정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부 다 무례하게 쓴 게 아니다. 진심을 담아 썼다"고 해명했습니다. 실제로 이 학교 재학생이 SNS에 공유한 사진을 보면 20줄 편지지 2장을 빼곡하게 채운 학생과 편지지에 직접 캐릭터를 그려 넣은 학생도 있습니다.
 

이 학교 재학생이 "모든 학생이 무례한 편지를 쓴 것은 아니다"라며 그림까지 그려 넣으며 정성껏 쓴 위문편지를 공개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보통 위문편지는 군부대와 자매 결연을 한 학교가 군 장병들에게 일괄 발송합니다. 학교가 교과 봉사시간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도록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기자가 군 복무 당시 받은 위문 편지도 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내온 것들입니다. 당시에도 편지 내용과 방식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반쯤 찢은 종이에 몇 줄 적은 뒤 광고 전단지를 접어 만든 봉투에 담아 보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A4 크기 편지지 한 장을 빼곡하게 채워 보낸 학생도 있었습니다. 사실 내용과 방식에 상관 없이 학생들이 귀중한 시간을 내 위문편지로 말 한마디 건네준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기자가 군 복무 당시 한 고등학생에게 받은 위문 편지 [사진=홍승완 기자]

다만 위문편지의 취지는 군인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위문편지를 보내는 의도가 조롱과 성희롱으로 크게 훼손돼 이런 논란이 불거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학생은 학교가 가이드라인까지 나눠줘 강제로 시켰다고 주장했지만, 학교 측은 편지를 쓰면 봉사활동을 1시간 한 것으로 인정해준 만큼 강제성은 없었단 입장입니다. 위문편지를 쓴 학생도 전체 1~2학년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학교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위문편지 중 일부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행사 본래 취지와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어떠한 행사에서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와 통일 안보의 중요성 인식이라는 본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편지를 받은 군부대는 해당 학교와 오래전부터 자매결연을 한 곳"이라며 "학교 측이 부대에 사과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 사과에도 불구하고 위문편지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엔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를 금지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청원인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위문편지를 쓴다는 것은 큰 문제로 보인다.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이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억지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청원은 13일 오후 3시 기준 10만3000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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