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한계기업 구조조정, 더 미루면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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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한계기업 구조조정, 더 미루면 늦는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 2021-02-14 21:51:02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서 관찰되는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평균적인 성장성과 수익성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신생기업의 시장 진입과 부실기업의 퇴출도 부진한 상태이다. 우리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에 못지않게 기업생태계 고령화도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물론 기업 생태계 고령화를 산업구조가 성숙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우리의 경우 조로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경제 환경의 변화와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기업 출산율은 점차 상승하고 있으나 존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경쟁력을 상실한 한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연명하면서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외감기업 중 3년 이상 연속하여 영업이익으로 차입금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생력을 사실상 상실한 한계기업의 비율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 수준으로 크게 상승한 후 최근까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경제 환경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경쟁력을 상실한 한계기업의 비중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10여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수준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기업 퇴출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계기업의 퇴출 지체가 야기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경제의 생산성 하락이다. 경쟁력을 상실한 한계기업이 점용하고 있는 노동과 자본이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에 재배치되는 경우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한계기업이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여러 가지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름으로써 정상적인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소위 좀비기업이라고 불리는 한계기업의 퇴출 지연이 산업 전체의 고용이나 투자는 물론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은 다수의 국내외 연구에 의하여 밝혀진 바가 있다. 이는 한계기업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퇴출이 국민경제의 경쟁력과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임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구조조정은 채무재조정이나 출자전환 등 금융수단을 활용하여 한계기업의 취약한 재무구조를 강화함으로써 회생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나, 최근에는 이에 더하여 경쟁력을 상실한 사업 영역을 여전히 자생력을 보유한 영역과 분리하여 정리 또는 매각하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재배치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인하여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규모 도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시적 조치로 취해진 대출만기와 이자상환 유예 조치의 시한을 연장한 최근의 정책에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존재한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옥석을 가리지 않고 금융의 선별기능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계기업 문제를 심화시켜 향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실업에 대한 부담이나 지역경제 침체를 이유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나 갈수록 심각해지는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등을 감안할 때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한없이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한계기업의 취약성이 더욱 뚜렷하게 표출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구조조정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할 시점이다.

구조조정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완화시키고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위하여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장을 잃은 노동자에 대하여 실업급여의 기간과 조건을 대폭 완화하여 적용함으로써 실업기간 동안 일정한 수준의 생활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재교육이나 훈련 등을 통하여 실업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더하여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규모를 축소하고 지원조건을 시장 환경에 부합하도록 개편함으로써 자생력을 상실한 기업이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여 연명하면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

[사진=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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