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일본의 통신료 인하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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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일본의 통신료 인하가 주는 교훈

차현아 기자 입력 : 2020-12-05 18:00:24
최근 일본 1위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가 월 3만1000원(2980엔)에 데이터 20GB를 제공하는 저렴한 요금제를 내놨다. 통화 한 번에 5분을 무료로 제공하는 혜택도 포함했다. 

사실 NTT도코모는 지난해에도 이미 통신비를 낮췄다. 지난해 6월 개편을 통해 NTT도코모는 데이터 용량이 적으면 기존보다 최대 40%, 많으면 최대 30%까지 요금을 할인해주는 체계를 도입한 바 있다.

지난해와 올해 NTT도코모의 통신비 인하 방침은 모두 정부의 인하 압박에 따른 결과물이다. 일본 통신업계는 "인프라에 매년 수천억엔 수준의 투자를 하고 있는데 무작정 요금을 인하하면 통신 품질 관리가 안 된다"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결국 통신비 인하를 피할 수는 없었다.

통신비 인하는 일본 정부에게는 일종의 '숙원 사업'이었다. 2015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직접 통신비를 낮춰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고 했다. 2018년에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서울(5095엔)과 파리(4470엔), 런던(2947엔)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을 때 일본의 통신비는 7562엔(약 7만8000원)으로 너무 비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9월 아베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한 직후, 그는 통신비 인하 정책에 더 적극적인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 통신 시장은 NTT도코모와 KDDI, 소프트뱅크가 각각 4:3:2로 3등분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4월부터 제4 이동통신 사업자로 라쿠텐이 발을 들였다. 일본 정부는 라쿠텐이 저렴한 통신요금제를 내놓고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메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3자 구도가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라쿠텐 등장에도 시장에 별 변화가 없는 건 당연하다. 3개 통신 사업자들은 오랜 기간 통신 사업을 영위하며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춰왔다. 아무리 알뜰폰 사업을 경험했다고는 하나, 직접 망을 구축해본 경험이 없던 라쿠텐에 서비스 시작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당장 세 사업자와 견줄만한 체급을 갖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시장경쟁이 없다며 통신사를 압박하는 배경으로 일각에서 스가 총리의 정치적 야심을 꼽는다. 실제로 취임 후 전임 아베 정권에서 떨어진 지지율이 회복하자, 스가 총리는 지지율을 더욱 끌어올리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략으로 여러 민생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통신비 인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NTT도코모의 저가 요금제 출시를 '스가제(菅製)' 가격인하라고 평가했다. 정부(官)가 압박해 내놓은 정책이라는 의미로, 스가 장관의 성에 포함된 한자인 관(菅)으로 바꿔 비꼰 표현이다.

압박에 못 이겨 사업자들이 내놓을 요금제가 정작 소비자의 편익 향상에 별 도움이 안될 거란 분석도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월 20GB 데이터를 5000엔(5만4000원)에, KDDI는 같은 데이터를 월 3980엔(4만3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검토 중이다. 요금제 가격 자체는 저렴해지지만 이전 요금제보다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양이 대폭 줄게 된다.

일본 통신사업자의 통신료 인하 움직임은 시장구조와 제도가 많이 닮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우리나라 통신 사업자들도 5G 저가 요금제 출시를 검토 중에 있다. 이번만큼은 일본과는 다르게, 정부 대신 사업자간 경쟁과 고민이 더 깊게 반영된 결과이길 기대한다.

 

[차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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