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리브라, 주요업체 이탈로 불안한 출발... 각국 정부도 암호화폐 발행 검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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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리브라, 주요업체 이탈로 불안한 출발... 각국 정부도 암호화폐 발행 검토 나섰다

강일용 기자 입력 : 2019-10-21 00:10:00
  • 기존 기축통화·중앙은행 영향력 악화 우려... 미·독·프 등서 규제 목소리 커져

  • 저커버그 "내년 발행계획 변함 없다" 규제 없는 국가서 선발행 가능성

  • 중, 국가 차원 디지털 통화 발행 진행... "달러와 경쟁 수준 화폐 추진 계획"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Libra)'를 주관하는 리브라 협회가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 주요 금융·결제업체들이 빠진 가운데 출범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 리브라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결제업체들에 많은 부담이 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결제·송금 플랫폼이라는 리브라의 발행 목표 달성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간) 리브라 협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공개한 28개 파트너사에서 7곳이 줄어든 21개 파트너사와 함께 창립총회를 열고, 리브라 협회 운영을 공식화했다.

리브라 협회 창립멤버는 △기술기업인 캘리브라(페이스북), 우버, 리프트, 스포티파이, 파페치 △이동통신사인 일리어드, 보다폰 △블록체인 개발사인 앵커리지, 바이슨트레일, 코인베이스, 자포홀딩스 △벤처캐피털인 안드레센 호로위츠, 브레이크스루 이니셔티브, 리빗캐피털, 트라이브캐피털, 유니온스퀘어벤처스 △학계 및 비영리기관인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럭션랩, 키바 마이크로펀드, 머시 콥스, 세계여성기금 등으로 구성됐다. 결제 업체는 페이유 한 곳만 남았다.

리브라 협회 이사회는 캘리브라, 마이크로 펀드, 페이유, 안데르센 호로이츠, 자포홀딩스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업체에서 파견된 인물들로 꾸려졌다. 주요 의사결정은 참여 업체 간 다수결로 진행되며 멤버 변경이나 리브라 준비금 관리 등 중요한 의제의 경우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사진=아주경제DB]


출발에 앞서 리브라 협회는 구성원 이탈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최근 3개월 사이 미국 온라인 결제 업체 페이팔의 이탈을 시작으로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메가르도 파고 등 리브라 협회 참여를 검토했던 대규모 결제 업체들이 리브라 협회 탈퇴를 선언했다. 이베이, 부킹닷컴과 같은 대형 온라인 상거래 사업자도 함께 떠났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생태계의 주축이 되길 기대하며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결제 업체들이 황급히 등을 돌린 배경에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리브라에 대한 강한 규제 의지가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리브라가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의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결국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페이스북을 포함해 리브라 협회 회원사들은 규제와 관련해 아직 준비 되지 않았다. 최근 탈퇴 행렬은 리브라가 당국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브라이언 샤츠 하와이 상원 의원과 셰러드 브라운 오하이오 의원은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등 결제 기업 최고경영자에게 리브라에 계속 참여하면 더 철저한 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경고 이후 세 업체는 리브라 협회에서 탈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리브라가 유로의 가치를 위협하고, 불법 요소가 짙은 '통화의 사유화(私有化)'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리브라 발행과 이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리브라만 이런 악재에 처한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비실명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도 암호화폐 발행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12일 텔레그램은 공식 채널을 통해 "새로운 정보 확보와 정부 당국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 텔레그램은 17억 달러 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고 텔레그램 서비스와 연동되는 블록체인 '톤(TON, 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과 암호화폐 '그램(GRAM)'을 추진할 것이란 계획을 공개했다.

하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텔레그램이 정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증권 발행을 금지하는 증권법 제5조를 위반했다며 암호화폐 프로젝트 임시중단 처분을 내렸다.

SEC는 "이번 조치는 불법적으로 판매된 텔레그램 암호화폐가 미국에서 유통되는 것을 막고, 텔레그램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은 전문성을 갖춘 공인 투자자에게만 증권을 판매하면 정부의 허가 없이 '폼 D' 신고서 작성만으로 증권을 판매할 수 있다며 그램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SEC는 그램이 얼마든지 일반인에게 재판매 가능한 구조라며 증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텔레그램은 암호화폐 투자를 유치하며 올해 10월 31일까지 암호화폐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분배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되돌려줘야 한다. 익명성을 무기로 러시아 정부와도 싸웠던 텔레그램에 대규모 자금난이라는 최대 위기가 닥친 셈이다.
 

[사진=아주경제DB]


◆대규모 인터넷 서비스와 암호화폐의 결합, 기축통화와 중앙은행의 영향력에 치명타

블록체인 업계에선 수많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업체 중에 유독 페이스북과 텔레그램만이 강력한 정부 규제에 부딪힌 이유를 '서비스 영향력'에서 찾고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왓츠앱 포함), 텔레그램과 같은 업계 1위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암호화폐를 통해 금융업에 뛰어들면 기존 기축통화와 중앙은행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두 업체는 암호화폐를 발행하며 전 세계 금융 취약 계층에게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적은 수수료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할 것이란 사업 목표를 제시했다.

약 24억명의 월 이용자 수를 보유한 페이스북과 약 16억명의 월 이용자수 를 보유한 왓츠앱에서 리브라를 주고받거나 리브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하면, 기축통화의 신뢰성과 영향력이 약한 제 3세계 국가뿐만 아니라 달러, 유로 등 강력한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과 유럽에서도 큰 반향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미국, 유럽에도 제도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금융취약계층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역시 월 이용자 수는 3억명 수준으로 페이스북보다 떨어지지만, 익명성을 앞세워 전 세계 검은돈의 주요 유통경로로 떠오를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마이크 라운즈 미국 사우스다코타 상원의원은 리브라 협회의 구성원인 앵커리지에 보낸 서한을 통해 "리브라는 미국 이용자들을 위한 진일보한 기술의 대표적 사례다. 금융취약계층과 기존 금융 시스템을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솔루션(리브라)을 외면하면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며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수년째 자체 실시간 지급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암호화폐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리브라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라운즈 의원은 "암호화폐가 증권인지 판단하는 증권법은 1933년 제정됐다. 컴퓨터와 인터넷은커녕 미국 농촌의 90%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낡은 법이다. 이러한 법으로 암호화폐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행 지연이나 규모 축소 가능성 있지만 리브라 발행 취소는 없어... 돈세탁·테러리스트 자금 지원은 기우

악재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은 2020년 리브라 발행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유럽 정부의 규제에 페이스북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고 리브라 발행이 지연되거나 축소될 가능성도 크지만, 리브라 발행에 대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의 강한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규제 압력을 피하고자 먼저 암호화폐 규제가 없는 국가에서 리브라 발행을 추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캘리브라 디지털 지갑은 페이스북 이용자 계정과 연결되어 있어서 정부가 원할 때 얼마든지 이용 기록을 추적할 수 있다"며 "리브라가 돈세탁이나 테러리스트의 자금 확보용으로 악용될 우려는 적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 대규모 인터넷 사업자의 암호화폐 발행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암호화폐 발행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5일 "연준이 리브라에 경계심을 느끼고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며 "연준은 민간 기업이 화폐를 만들어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장악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발행이 좌절되더라도 제2, 3의 페이스북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연준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 발행을 구상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 관계자들이 모이는 세계은행 총회에서 연준의 암호화폐 발행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게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중국, 러시아도 암호화폐 형태의 디지털 통화 발행을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 달러와 경쟁할 수 있는 국가 수준의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초상은행의 자회사인 CMBI(China Merchants Bank International)는 금융 서비스용 분산형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너보스와 제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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